국내
1969년 워런 버핏 주주서한 번역
에이버리
2023.09.05
※ 감수인 1969년 당시 시장 자료 몇 개 더합니다.
1. 버크셔 해서웨이 시장가치 상승률
2. 미국의 인플레이션
3. 10년 만기 채권 금리.
4. 다우존스 지수 5. 국제유가
6. 증권 매수를 위한 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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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4월 3일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 귀하:
사 년 전 여러분의 경영진은 오로지 지속적으로 섬유 산업에 자본을 투자했다면 나타났을 성과보다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수익력을 창출하는 데 전념하였습니다. 이 계획을 실행하기 위한 자금은 저희의 투자 및 경영 기준을 충족하는 사업체를 인수하기 전까지 일시적으로 유가 증권에 투자되었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꽤나 성공적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특히나 전적으로 충분치 못한 수익률로 큰돈을 투자해 섬유 사업을 확장한 기업들의 성과와 대조하면 말이죠. 저희는 두 사업체의 인수를 마무리할 수 있었고, 이들의 성공적인 영업은 버크셔 해서웨이가 작년에 비록 섬유 사업에 투자된 일부 자본에서 5%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익률을 얻었음에도, 평균 자기 자본 대비 10%가 넘는 이익률을 올릴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저희는 보유하고 있던 유가 증권 전체를 지난 이 년간 $5백만가 넘는 세후 이익을 얻고 청산했습니다. 여기서 얻은 이익은 인수를 위한 차입금이 너무나 구하기 힘들었던 1969년에 주요한 인수를 할 수 있도록 해준 중요한 자금이 되었습니다.
유가 증권은 더 이상 매입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하지만 매력적인 인수 기회는 계속 찾고자 합니다. 모든 인수는 당연히 적절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냐에 달려 있습니다.
섬유 사업
1969년 달러 표시 매출은 1968년 대비 대략 12% 낮았습니다. 그렇지만 순이익은 박스 베틀 부문 처분에 따른 상당한 손실에 덕분에 조금 더 높았습니다. 자본 대비 이익률은 다소 개선되었지만, 이를 개선하기 위한 엄청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저희는 현재 이전 시기에 봤던 것보다 더욱이 극심한 섬유 업계 불황 속에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최종 용도로서의 섬유 제품 대한 수요가 부족한 실정입니다. 이러한 수요 부족은 재고 쌓임을 방지하기 위해 필히 생산을 감축해야 했습니다. 남성복 안감 부문과 가정용 섬유 부문 둘 모두 1970년의 첫 분기에 2주 동안 공장 가동을 강제로 중단했지만 재고는 여전히 높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이번 수요의 둔화는 일반적인 섬유 시장의 주기에서 일어나는 것보다 훨씬 심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섬유 시장 불황의 극복은 아마 연방 정부가 제어할 수 있는 경제적 요인에 대한 조치에 달려있을 수도 있습니다.
저희 섬유 사업은 과거의 성과와 저희의 시장 예측에 기반해 만족스러운 사업을 할 잠재력이 있는 분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공장을 개선했으며 업황이 나아진다면 상당한 수준의 원가 절감이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는 1970년에 보다 낮은 수익을 거둘 것으로 보입니다.
보험 사업
잭 링월트는 1969년에 모든 부서에서 신기록을 세운 특출난 경영자입니다. 다시금 올해 화재 및 손해 보험 업계가 보험 계약 인수 부문에서 상당한 손실을 경험한 반면 저희 보험 자회사들은 보험 계약에서 조정 기준 상당한 이익을 거두었습니다. 링월트씨는 1941년에 기업을 설립한 이래, 업계에서 자주 언급되지만 자주 달성되지는 못하는,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보험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했습니다.
저희의 새로운 보증 보험 부서는 규모는 작지만 올해 좋은 진전을 이뤄냈습니다. 저희는 로스앤젤레스에 지점을 열고 캘리포니아에서 산재 보험 시장에 진입했습니다. 저희의 새 재보험 부문은 좋은 출발을 한 것처럼 보입니다. 비록 이 사업의 본질로 말미암아 영업 성과에 관한 현명한 판결을 내리기 위해서는 최소 수 년이 걸리지만 말입니다. 저희 흥미로운 새 "소속 주(home state)" 보험 영업도 계획 중입니다.
20년 넘게 홍보와 보험 인수 부서가 특출난 성과를 거두는데 크게 기여한 필 리시가 올해 초 영업 담당 부사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저희 보험 사업은 계속해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은행 사업
1969년 버크셔 해서웨이에 가장 중요한 사건은 일리노이주 록포드의 일리노이 내셔널 은행 및 신탁의 지분 97.7%를 인수했다는 것입니다. 이 은행은 유진 에이벡이 외부 자금 없이 1931년 순자본 $250,000과 $400,000의 예금으로 설립되었으며, 1969년 $1,700만의 순자산과 $1억의 예금을 유치한 은행으로 키워냈습니다. 에이벡씨는 계속해서 의장직을 맡고 계시며 (증권 손실을 제하고) 1969년 거의 $2백만에 근접하는 기록적인 영업 부문 이익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러한 이익은 예금이나 총자산에 대한 비율로 볼 때 이 나라의 규모가 더 큰 최고의 상업 은행들 수준에 근접하며 그들은 신탁업을 주요 업무로 하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1970년에 보다 나은 이익을 얻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쉽지 않을 것입니다. (1) 저희 은행은 이미 매우 효율적인 사업을 하고 있으며, (2) 일리노이의 단일 점포 은행법은 시내에 위치한 주요 은행으로 하여금 적당한 수준 이상의 예금을 유치해 성장시키는 것을 어렵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의 일 년을 소유하고 있는 지금 저희는 일리노이 내셔널 은행에 투자한 것과 에이벡씨와 관계를 맺은 것이 매우 기쁩니다.
케네스 V. 체이스
대표 이사
[워런 E. 버핏 서한 작성]
해설 1:
버핏은 1969년 5월 29일 자 파트너십 서한에 주로 두 가지 이유로 은퇴와 파트너십의 청산을 선언합니다.
1) 수치(quantity)를 강조하는 투자자로서 자신의 기준에 맞는 주식을 더 이상 찾아낼 수 없으며;
2) 평생을 투자라는 게임에 매여 올인하는 인생을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파트너십을 운용하던 당시의 버핏은 소위 벤 그레이엄 방식에 가까운 투자 기법을 주로 활용했습니다. 수치적으로 아주 저평가된 주식에 집중하는 것이었지만 주식 시장의 열기가 달아오르면서 자신의 기준을 충족하는 투자 건을 찾아내기 힘들었던 것이죠. 벤그레이엄과 버핏의 차이를 설명하는 글도 조만간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본 서한과 관련 없는 내용이지만 조금 더 부연을 하자면 버핏 파트너십은 크게 네 가지 항목에 투자하였습니다. 이는 1) Generals -Private Owner Basis, 2) Generals -Relatively Undervalued, 3) Workouts, 4) Controls입니다. 1)과 2)는 기본적으로 일반적인 가치 투자하면 떠오르는 방식과 유사합니다. 다만 그 기준이 1)의 경우 기업을 전부 소유했다면 소유주가 얻을 수 있는 절대적인 가치에 집중하며 2)는 유사한 성질을 가진 증권의 상대적 가치를 평가합니다. 3)은 공개된 정보를 바탕으로 청산, 합병, 기업 분할과 같은 특별한 이벤트가 공포되었고 그 이벤트가 성사될 가능성 및 기간에 베팅하는 것입니다. 비교적 최근 이뤄진 버크셔의 액티비전 블리자드 투자가 이러한 유형의 투자 방식입니다. 4)는 기업의 경영권을 손에 넣는 것입니다. 대체로 Generals -Private Owner Basis에서 시작해 큰 규모의 지분으로 확장된 경우가 다수라고 버핏은 1965년 파트너십 서한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방법론이나 예시는 글이 너무 길어지기 때문에 우선은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여하간 버핏은 1969년 이전부터 이러한 기준으로 매입할 수 있는 옵션이 줄어들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으며 그에 따라 파트너십을 청산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배경으로 말미암아 버크셔에서 더 이상 유가 증권을 매입하지 않겠다고 명시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겨우 이 얘기를 짜내기 위해 상당히 먼 길을 왔네요 ㅎㅎ)
2)가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내용입니다. 사실 버핏이 파트너십을 청산한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심리적 이유였습니다. 그는 파트너십 운용에 막대한 부담을 느끼고 있으며 파트너십 서한에서 정신적, 육체적 피로를 호소해왔습니다. 와이프 수지가 평생을 돈만 좇으며 살 거냐고 압박했다는 일화도 그의 전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대목이 탭 댄스를 추면서 일을 간다는 그의 평소 발언에 비추어 의아하신 분들이 많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버크셔의 경영 등은 파트너십의 청산 이후에도 계속 이어나갔죠.
버크셔는 버핏이 파트너십에서 부담을 느끼는 요소를 제거하고 운영하고자 했던 회사 중 하나입니다. 수익률을 최대한 짜내고자 노력해야 했던 버핏 파트너십의 부담에서 벗어나 좋아하는 업계와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적당한 수익을 추구하는 것을 말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마치 벤 그레이엄이 그랬던 것처럼, 이러한 방식과 수치(quantity)보다 질(quality)을 더 중시하는 방향으로의 전환의 조합이 버핏에게 보다 큰 부를 가져다준 것으로 보입니다.
해설 2:
수익을 내는 보험 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오늘날에도 거의 지켜지지 않는 정책 중 하나입니다. 보험 상품의 동질성으로 말미암아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서 보험사는 손해를 보면서까지 보험을 팔고 있습니다. 이 손해는 확보한 보험금을 채권 등에 투자해 얻는 이익으로 상쇄됩니다. 버핏은 이 자금을 '플로트'라 부르며 보험사는 보험 계약에서 얻는 손실보다 플로트를 투자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크기 때문에 손해를 보면서 보험을 팔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버크셔 해서웨이는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보험 계약을 체결하고자 합니다. 플로트에 대해서도 글을 하나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해설 3:
당시 인수한 일리노이 내셔널 은행은 훗날 일종의 금산 분리 법에 의해 강제로 분할하게 됩니다. 버핏은 주주총회에서 만약 법이 이렇게 되지 않았다면 보험사 대신 은행에 집중했을 것이라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관해서는 훗날 청산 시점을 다루는 서한에서 보다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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