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의 팜
나의 일그러진 영웅; 김형태의 사례

동물원
2016.12.06
김형태는 황신혜밴드의 리더였다.
1998년 난 황신혜밴드 노래를 꽤 열심히 들었는데
"살자고 먹는건지 먹자고 사는건지 알수가 없던" 시기이기도 했고
그냥 하릴없이 "너구리는 너무해요 깡총" 뛰어보고 싶던 시기였고
"비가 내려 외로운 날엔 짬뽕을 먹는 것" 외에 별 일도 없었다.
"당신의 아이가 여기있어요" 돌아다녀도 문전박대를 당하는게
당연한 듯한 일상에 그냥 노래를 들었다.
1997년~1999년엔 홍대를 중심으로
뽕끼가 흘러넘치는 펑키가 유행이었는데
(건전가요니 조선펑크니 따위의 네이밍으로)
그 중에서도 뽕끼와 똘끼가 있는 느낌이었다.
1998년 가을에 황신혜밴드가 대학에 공연을 왔는데
잔디광장이나 운동장의 대형무대가 아니라
정문 근처에 아주 보잘 것 없는 (청룡상이라 불리던)
공터였다.
보잘 것 없는 공연이었고 관객이래야 100명 남짓?
저녁부터 밤까지 땀을 뻘뻘 흘리며 뛰었고
황신혜밴드의 노래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다.
1999년 황신혜밴드의 리더라는 김형태가 대학로 극장에서 햄릿을 연기했다.
기타 이팩터를 이상하게 조작하면 찟어지는 소리가 나오는 것처럼
뭔가 괴상한 사운드가 추가된 햄릿이었고
난 돈을 내고 그 무대를 보러간 적이 있다.
(분위기만 기억날 뿐 세부내용은 별로 기억이 없다.)
그리고 15년 정도가 흘러
2016. 7월 김형태가 뉴스에 나왔다.

자화자찬에 가까운 보도에 의하면
"요즘 박물관 아트 상품이 좋아졌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특히 그가 개발한 '오묘한 녀석들' 캐릭터가 인기다. 노트·향초·손거울 등 각종 아트 상품에 앙증맞은 고양이 그림을 넣었다. 고양이 다섯 마리가 등장하는 조선시대 민화를 활용했다. 단순히 유물 사진을 프린트해서 판매하던 기존 아트 상품에서 벗어나 캐릭터를 브랜드로 활용한 새 전략이다."
대충 이렇다.
뭐랄까 내가 조용히 좋아하던 밴드의 리더가 이제 어엿한 사회의 리더가 되었다는 묘한 느낌에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찌질이가 반장이 되었구나!)
그러나 불과 몇 달이 지나
2016. 10월 그의 성추행과 부도덕한 처신과 권위주의에 대한 기사들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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