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Gray의 팜
예비타당성 조사의 한계, 정권의 업보 (김희준)

Mr Gray
2019.02.03
희준형과 같은 곳에서 일할 뻔 했었는데,
그리되었음 우찌 지냈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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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완벽한 제도란 없다.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도 그렇다. 장점이 많은 제도지만 한계도 분명하다.
입장에 따라 견해는 달라진다. 기획재정부는 예타를 가지고 재정을 타이트하게 관리하고자 하고, 국토부나 지자체는 예타 때문에 필요한 사업을 제때하기 어렵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이 간극을 누가 조율하고, 결정해야하나? 국민투표로?국회가? 결국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해야한다. 국회가 그 결정이 맘에 안들면 예산을 승인하지 않으면 된다.
이런 경우에 대통령은 어떤 결정을 해도 욕먹게 되어있다. 예타를 면제하면 재정을 함부로 썼다고, 가만히 놔두면 경기가 개판인데 아무것도 안한다고. 최종의사결정자는 신중히 검토하고, 과감하게 결정하고, (선거로) 책임지는 자리다.
예타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많이들 언급하셨으니, 난 예타가 가진 한계를 말해보고자 한다.
예타는 경제성과 정책성, 국토균형발전 등의 항목으로 평가한다. 근데 경제성이 수학이라면, 나머지 둘은 윤리나 지리 격이다. 예타는 경제성 평가가 당락을 결정한다. B/C 값이 0.8 이하인데도 예타를 통과하는 경우는 5% 수준에 불과하다.
수학을 언급했지만, 진짜로 예타는 대입 시험 같다. 기준이 타이트하다보니 이걸 통과하고 나면, 그 이후론 경제성을 챙기는 사람도 부서도 없다. 경제성이란 시시각각 바뀌는 거라, 오히려 지속적인 관리와 수정이 필요한데, 까다로운 예타가 오히려 그런데 대한 관심을 멀어지게 만든다.
B/C는 잘나오는 사업과 안나오는 사업이 어느정도 정해져있다. 대표적으로 항만은 전자, 철도는 후자. 철도는 0.6을 잘 못 넘더라. KTX 조차도 1을 넘기긴 쉽지 않다. 이게 반복되면 국가의 인프라가 균형적으로 건설되기 어렵다.
인프라와 도시는 선순환으로 발전한다. 반대로, 계획된 인프라가 적기에 건설되지 않으면 도시는 사람이 찾지 않거나 빠져나간다. 진짜 문제는 이미 비용을 지불한 사람들의 고통이다. 신도시 개발시에 분양자들에게 개발 분담금을 진탕 뜯어 놓고선 인프라는 적기에 건설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타가 통과되어도 이런 저런 이유로 지연되는 판에, 예타에 걸리면 기약이 없다. 이로 인한 분양자들의 고통은 누가 책임져야 하나?
지금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면 답답한 점이 한두개가 아니다. 허허벌판일 때 좀 넓게 만들지. 뭘 그리 수요를 챙기겠다고 여기저기 경유하며 이리도 꼬불꼬불 만들었나 싶고. 그런데 저렇게 당대의 경제성을 생각해서 만든 경부고속도로라도 지금의 B/C 기준을 적용하면 통과할 수 있었을까? 어림없을 것이다.
예타의 중요성은 누구나 공감한다. 하지만 일률적인 제도가 가진 한계는 분명하다. 정책성에 대한 가중치를 높이는 식으로 수정하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것도 일률적이긴 마찬가지다. 장기적으로 계속 적용되는 기준이니 감놔라 배놔라 하는 사람도 많다. 과연 정권 임기 안에 바꿀 수 있을까? 분명 야당은 반대할테고, 정권이 바뀌더라도 그 때 야당은 역시 반대할 것이다.
기업의 의사결정도 비슷한 점이 많다. 재경부서의 사업성 평가는 필수 절차다. 워낙 깐깐해서 현업 부서의 원성이 높다. 그래도 따라야 한다. 하지만 뒤집어지는 경우가 있다. 최고 경영자를 설득하거나, 스스로 의지를 가진다면.
재경은 결국 몇년 내의 수익성에 초점을 맞출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긴 시간이 지나야 빛을 볼 수 있는 투자 건은 통과되기 어렵다. 과감한 투자는 언제나 최고경영자의 몫이다.
물론 그 결정이 회사를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초석을 놓을 수도 있다. 세상은 빠르게 바뀌고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뭐라도 시도하는게 낫다.
발전하는 기업은 대개 과감히 투자를 계획하고, 그 사업성을 기업의 구성원들이 합심하여 만들어나간다. 후배가 경제성은 운이 70% 같다고 했는데, 나는 그 이상이라고 본다. 미래에서 온 사람은 잘되는 사업과 안되는 사업을 구분할 수 있겠지만, 현재에선 누구도 그걸 알 수 없다. 모두가 사업성이 있을거라고 뛰어들지만, 성공과 실패는 공존한다. 그래서 성공을 위해 계속 노력하고 역량을 결집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가 차원의 사업은 더 생각해볼 지점도 있다. 기업은 당장 돈이 없으면 망하지만, 국가는 그렇지 않다. 돈을 빌려주겠다는 이들이 넘쳐난다. 하물며 예산이 남고, 경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면.
경제는 모든게 매끄럽게 순환될 때 빨리 성장한다. 생산성이 높아지고, 소득이 높아지고, 수요가 늘어나고, 투자가 늘어나고, 다시 생산성이 높아지고. 나는 이게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랑 비슷하다고 생각하곤 한다. 하나의 지점에 문제가 생겨서 라인을 멈추면, 그 에너지를 비축해서 다음엔 라인을 빨리 돌릴 수 있는게 아니다.
불황은 더 나은 도약을 위한 발판이 될 수 없으며, 성장을 지연시킬 뿐이다. 역사를 보면 성장을 멈춘 국가와 지역은 특별한 외부 충격이 오기전까지 저성장을 지속한다. 반대로 성장의 경로를 탄 곳은 계속 뻗어간다. 그래서 몇 백년이 지난 후엔 말도 안되는 격차가 나기도 한다. 물론 지금의 한국이 고성장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불황의 위험을 감수할 이유도 없다.
그래서 난 금융과 재정의 완화는 빠르게 결정하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쓸데도 딱히 없는데 세금을 더 걷을 필요는 없지만, 예산이 있는데 미래에 더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저축할 필요는 더더구나 없다. 적어도 국가 차원에서는 말이다.
물론 이번 예타 면제에 불만이 없는 건 아니다. 수도권은 아예 빠지고, 지역 나눠먹기식으로 면제해주는 건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토건을 적폐로 공공연하게 몰던 이번 정권이 나름의 신념과 배치되는 결정을 하기 위해선 국토균형발전이란 최소한의 명분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해한다.
야당이 성토하고 있지만, 자기가 정권을 잡으면 똑같이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아쉽다. 왜 정권 출범 때부터 그리 강한 말만 쏟아내었는지. 그래서 정권 역시 부정적 여론을 감수해야만 한다. 업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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