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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의 생각

블로그 대문의 비밀(feat 비트코인, 튤립 버블, 유대인,투기와 투자) 

메르

2024.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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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라 가벼운 이야기입니다.

블로그 대문이 너무 허술하다는 댓글들이 꽤 있습니다.

블로그 대문을 이것으로 정한 이유를 주절주절해봅니다.

앞부분은 중복이 있지만, 내용에 변화가 좀 있습니다.

1. 스페인이 있는 이베리아반도(초록색)에는 이슬람과 유대인들이 같이 살고 있었음.

2. 15세기에 기독교를 믿는 에스파냐 왕국이 이슬람을 몰아내고 이베리아반도를 차지함.

3. 1492년 3월 31일, 스페인의 에스파냐 왕국은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을 이단으로 보고 유대인 추방령을 발표함.

4. 유대인들에게 4개월 시간을 주고, 그 안에 기독교로 개종을 하든지 아니면 나라를 떠나라고 한 것임.

5. 스페인에서 유대인을 몰아낸 추방령을 "알함브라 칙령"이라고 부름.

6.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프란시스코 타레가는 음악을 배운 제자, 콘차 부인을 사랑하게 됨.

7. 콘차 부인이 유부녀 였기에 이루어질수 없는 사랑이었음.

8. 고백조차 하지 못한채 여행길에 오른 타레가는 알함브라 궁전에 가게 됨.

9. 어둠이 내린 알함브라 궁전위에 뜬 달을 바라보며, 콘차 부인을 생각한 타레가는 그 풍경으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탄생시킴.

10. 타레가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방울을 표현한 듯한 트레몰로 멜로디는 별 볼일 없는 악기였던 기타의 황금시대를 열게 됨.

https://youtu.be/OOsRMECWKAE?si=IOy6Wt_4EicEtd2i

11.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알함브라와 "알함브라 칙령"의 알함브라는 모두 같은 곳을 말함.

12. 당시 에스파냐 왕국의 인구는 700만 명 정도였는데, 이중 유대인이 50만 명 정도였음.

13. 나라를 떠나는 유대인들에게 금, 은, 현금은 가지고 나갈 수 없고, 몰래 가지고 나가다 발각되면 사형을 시키겠다고 함.

14. 알몸으로 나가라는 말이었음.

15. 당시 스페인의 유대인은 50만명에 불과했지만, 은행가,상인, 고리대금업자들로 가장 부유한 집단이었음.

16. 명분은 유대교라는 이단의 추방이지만, 실질은 돈이 원인이었음.

17. 에스파냐 왕국은 이슬람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전쟁비용으로 유대인들에게 큰 돈을 빌렸고, 전쟁에서 공을 세운 영주와 기사들에게 지불할 돈과 영토가 필요한 상황이었던 것임.

18. 유대인들에게 빌린 부채를 소멸시키고, 유대인들의 재산으로 영주와 기사들의 전쟁 보상금을 지불할 속셈이었던 것임.

19. 에스파냐 왕국이 금, 은, 현금을 못 가져 나간다고 하니, 유대인들은 재산을 보석으로 바꿔서 나라를 떠남.

20. 법의 허점을 잘 이용한 것임.

21. 유대인들중 일부는 보석을 가지고 벨기에 앤드워프로 이동을 함.

22. 당시 보석은 귀족과 왕실의 전유물로 대중적인 장신구가 아니었음.

© anastasia3385437, 출처 Unsplash

23. 앤드워프로 이동한 유대인들은 보석을 귀족과 왕실이 아니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거래하기 시작함.

24. 보석 자체의 아름다움에 귀족과 왕실의 전유물 같았던 명품이미지가 돈 많은 상인등 부유층의 인기를 끌게 됨.

25. 당시는 다이아몬드의 최대 생산국이 인도였음.

26. 유대인들은 다이아몬드를 처음으로 가공해서 판매했고, 인도산 다이아몬드 원석을 독점하며 부를 쌓아나가기 시작함.

27. 보석을 Jewelry(주얼리)라고 부름.

© luisanagalicia, 출처 Unsplash

28. 보석을 뜻하는 주얼리(Jewelry)가 유대인(Jew)에서 기원한 배경임.

29. 벨기에 엔드워프는 현재도 전세계에서 채굴되는 다이아몬드의 80%가 거래되며 다이아몬드의 수도로 불리고 있음.

30. 이베리아반도에 살던 유대인 50만 명 중 절반정도는 기독교로 개종을 해서 스페인에 남았고, 나머지는 스페인을 떠나게 됨.

31. 스페인의 유대인중 일부는 보석을 가지고 엔드워프로 갔지만,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가까운 포르투갈로 이동함.

© rresenden, 출처 Unsplash

32. 1547년이 되자 포르투갈도 기독교 힘이 세지게 되며 종교 검열이란 것을 하게 됨.

33. 종교 검열은 기독교로 개종을 했는지 조사를 해서, 유대교를 믿는게 밝혀지면 전 재산을 몰수하고 화형 시키라는 교황의 조치였음.

34. 유대인들은 다시 포르투갈을 떠남.

35. 이들이 최종 정착을 한 곳이 네덜란드였음.

36. 당시 네덜란드는 바다보다 낮은 저지대가 많아 바닷물이 자주 범람하니, 땅이 소금 밭이라, 농사가 힘든 못 사는 나라였음.

37. 소금 밭이라 농사가 힘들자, 네덜란드 원주민들은 대부분 청어를 잡는 어업을 함.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38. 청어는 돈이 되는 고기였음.

39, 당시 유럽 기독교 국가는 1년의 1/4 정도가 금식일 이었음.

40. 금식일을 지키려면 소나 돼지, 닭 같은 고기를 먹을 수 없었지만, 생선은 고기에 해당이 되지 않아 먹을 수 있었음.

41. 청어를 잡아 소금에 절이면 1년 정도는 냉장을 하지 않아도 먹을 수 있어 금식일이 있는 유럽에 청어는 장사가 됨.

42. 네덜란드로 이사 온 유대인들은 청어를 절이는 소금에서 돈 냄새를 맡음.

43. 네덜란드의 어부들은 암염을 사용해서 청어를 절였는데,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떠나온 이베리아반도의 천일염을 독점 수입함.

© magict1911, 출처 Unsplash

44. 천일염이 암염보다 쌌고, 천일염에 절인 청어가 암염에 절인것보다 맛있다 보니, 청어 시장을 유대인들이 장악하게 됨.

45. 청어로 돈을 번 유대인들이 청어잡이 배를 가지게 되었고, 배가 생기자 발트해의 화물 운송에 뛰어듦.

46. 당시 덴마크는 발트해 화물 운송선들이 지나가야 하는 길목에서 통행세를 받았음.

47, 덴마크가 통행세를 받는 기준은 배의 갑판 크기였음.

48. 갑판이 클수록 통행세를 많이 내야 하니, 유대인들은 갑판은 좁고 물건을 싣는 선창이 뚱뚱한 배를 만듦.

49. 갑판이 적으니 통행세는 적게 내고, 선창이 뚱뚱하니 물건은 충분히 실을 수 있는 배를 플루트 선이라고 함.

50. 선원 숫자도 줄임.

51. 당시 배들은 바람의 힘으로 운행을 했는데, 큰 돛을 올리고 내리는데 보통 배 한 척당 30명 정도 선원이 필요했음.

© thommilkovic, 출처 Unsplash

52. 새로 개발한 신상 도르래를 돛에 붙임.

53. 도르래가 돛에 달리자 돛을 올리고 내리는 힘이 적게 들어서 30명이 아니라 10명의 선원만 있어도 배 운항이 가능해진것임.

54. 세금을 적게 내고, 선원이 적어 인건비도 덜 드니, 네덜란드 유대인들의 화물 운송비는 경쟁국인 영국에 1/3 수준으로 떨어짐.

55. 네덜란드 유대인들이 유럽 화물무역 시장의 절반 이상을 먹게 됨.

56. 네덜란드 유대인들이 큰돈을 벌기 시작하자 기독교 국가들의 견제가 시작됨.

57. 네덜란드 배의 스페인 항구 입항을 금지시킨 것임.

58. 네덜란드 유대인들은 유럽 화물 운송을 포기하고 해외무역으로 눈을 돌림.

59.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를 만들어 인도, 중국 등으로 무역을 확대하며 당시 해양제국이던 영국과 경쟁을 시작한 것임.

60. 네덜란드 유대인들이 만든 동인도 회사는 중국에서 히트를 침.

61. 당시 유럽 지역은 금과 은의 가치가 12 대 1 정도였음.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62. 중국은 은본위 제도 국가라 은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더 쳐줘서 6 대 1 정도로 은과 금의 교환비율이 좋았음.

63. 은을 가득 싣고 중국으로 가서 금으로 바꿔서 돌아오면 기본이 2배 장사가 되는 것임.

64. 추가 소득도 있었음.

65. 은을 금으로 바꾸면 부피가 1/6로 줄어드니, 돌아오는 배 빈칸을 도자기로 채우게 됨.

66. 중국산 도자기가 유럽 귀족집단에 명품으로 유행을 했고, 나중에는 중국산 도자기 수입이 금, 은 교환보다 돈을 더 벌게 됨 .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67. 중국 무역에 네덜란드의 경쟁국인 영국은 선교사 문제가 있었음.

68. 중국은 영국과 교역을 하면 선교사들이 따라들어와 기독교를 퍼트리는 것이 정권 유지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봄.

69. 네덜란드 유대인들은 종교와 관련이 없었음.

70. 유대교는 유대인들만 믿는 민족 종교라서 타민족에 전도를 안 함.

71. 중국 입장에서는 종교 전파 없이 장사만 하는 네덜란드 유대인이 마음 편한 무역 상대라 점점 거래 비중을 높이게 된 것임.

72. 네덜란드 유대인들이 큰 돈을 벌자 부작용도 나타남.

73. 워낙 돈을 많이 벌다 보니, 예금이나 부동산 투자만으로는 소화할 수 없을 만큼 큰돈이 네덜란드 시장에 뿌려진 것임.

74. 투자대상을 찾던 유동자금들이 튤립을 발견함.

© mekanizm, 출처 Unsplash

75. 그 당시 튤립은 단색의 평범한 튤립은 싸지만, 희귀한 종은 비싸게 거래되고 있었음.

76. 집에 희귀한 튤립이 있다는 것은 부의 상징으로 봐서, 부유층을 중심으로 희귀종 튤립을 구하려는 수요가 슬슬 커지기 시작함.

77. 부자의 취미생활인 희귀종 튤립 재배에 중산층과 서민들까지 올라타기 시작함.

78.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주식이 너무 비싸 살 수 없었던 중산층과 서민들이 꿩보다 닭이라는 마인드로 튤립에 올라 탄 것임.

79. 수요가 많아지기 시작하자 희귀종 튤립 값이 오르기 시작했고, 네덜란드 전역에 튤립 인기가 떡상함.

80. 튤립의 특성이 불을 더 지름.

81. 튤립은 꽃으로 거래되는 게 아니라 알뿌리인 구근 형태로 거래가 됨.

82. 구근 형태로는 생긴 게 비슷비슷해서 희귀종인지 일반 종인지 구별이 안됨.

83. 키워서 꽃을 피워봐야 구근이 일반 종인지 큰돈이 되는 희귀종인지 알 수 있다는 말임.

84. 구근을 사서 키우는 게 일종의 랜덤박스 로또가 됨.

85. 400여 종의 신품종이 개발되었고, 튤립마다 황제급, 총독급, 제독 급등 등급이 매겨지며 거래되기 시작함.

© sebastr, 출처 Unsplash

86. 슬금슬금 오르던 튤립 가격은 1637년 1월부터 폭등하기 시작함.

87. 하루 두세 배가 오르는 날도 있고, 한 달에 몇십 배까지 오르기도 함.

88. 황제급 튤립 한 뿌리를 팔면 돼지 8마리, 황소 4마리, 양 12마리, 밀 24톤, 와인 630리터, 맥주 600리터, 버터 2톤, 치즈 450킬로그램, 은 술잔, 옷감 108킬로그램, 침대세트를 모두 사고도 돈이 남았다는 기록이 있음.

89. 네덜란드 1위 은행인 암스테르담은행의 예치금이 350만 길드였는데, 암스테르담에서만 2000만 길드 이상의 튤립이 거래됨.

90. 튤립 가격이 빠른 속도로 올라가자, 많은 사람들이 튤립 재배에 뛰어들었고, 공급이 많아지기 시작함.

91. 1637년 2월 5일 아침 "그냥 꽃인데 이렇게 비쌀 수가 있을까? 이거 위험하다" 하는 소문이 시장을 휩쓺.


감수인)


출처.나무위키

 

 

92. 다들 튤립 가격이 정상이 아니라고 느꼈지만, 더 비싼 가격에 사주는 사람이 있어서 시장이 유지되고 있었음.

93. 루머가 이런 사람들의 불안심리를 자극하자, 팔려는 사람이 시장에 몰려들고, 사려는 사람은 갑자기 사라져버림.

94. 2월 5일부터 4개월간 튤립 가격이 99% 하락해버림.

95. 아래 그래프가 그당시 튤립 가격의 변동을 나타낸 표이고, 블로그 대문으로 쓰고 있음.

96. 튤립가격이 폭락하자 나라가 난장판이 되었고, 암스테르담 운하에는 튤립 가격 하락을 비관해서 자살하는 사람들로 정모가 열림.

97. 그날 이후 튤립 가격은 다시는 오르지 않았음.

98. 셀수없는 정도로 많아진 잡코인들을 보면, 튤립이 떠오름.

99. 비트코인과 이더리움까지는 약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함.

© silverhousehd, 출처 Unsplash

100. 일종의 국가화폐 대피소의 역할이 그것임.

101. 해당 국가에 인플레이션이 극심해지고, 화폐가치가 계속 떨어지면 과거에는 달러나 금을 샀지만, 비트코인을 살수도 있게 됨.

102. 실물 달러뭉치나 금은 보관하거나 돈으로 바꾸기 힘들고, 금액이 커지면 은행 등 금융기관을 통해서 거래를 할 수 밖에 없음.

103. 은행에 달러나 금을 예치하기는 쉬워도, 정말 필요로 할 때 찾을 수 있을까 걱정이 드는 나라들이 꽤 있음.

104. 가상화폐는 많은 금액을 쉽게 저장하고, 필요시 어디든 쉽게 이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음.

105. 부정부패나 마약, 범죄 등의 부정한 자금들이 돈 세탁을 하기 쉬운 것도 사악한 장점임.

106. 이런 장점들은 정상적인 국가에서 일반적인 재산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크게 와닿지는 않음.

107. 국가 차원에 큰 문제가 없고, 정상적인 자금이라면 제도권 금융기관을 통해서 거래하면 충분하기 때문임.

108. 나머지 잡코인들은 이런 의미를 부여하기도 힘듦.

© a_ismail, 출처 Unsplash

109. 더 비싸게 사줄 사람이 나타나면 가격이 오르고, 그런 사람이 사라지면 가격이 떨어지는 수급시장일 뿐임.

110. 튤립 버블을 보면서, 잡코인들을 떠올린 이유임.

© notso, 출처 Unsplash

111. 튤립 가격이 폭락한 1637년 1월 5일 전에 튤립을 팔아 충분한 수익을 먹고 시장을 떠난 사람이 승자이기는 함.

112. 누군가가 손해를 본 돈으로 누군가는 돈을 버는 제로섬게임이 벌어지는 곳이기 때문임.

113. 하지만, 그것은 투자가 아니라 투기라고 생각함.

한 줄 코멘트. 가치가 올라가서 가격에 반영되는 게 아니라, 누군가 더 비싼 가격으로 사줄 때만 가격이 올라가는 것들은 조심할 필요가 있음. 수시로 사고판다고 수익률이 꼭 좋은 것은 아닌듯함.

PS) 코인에 대한 에피소드

1. 2013년에 동료 몇명과 함께 비트코인 교육을 받은 적이 있었음.

© kanchanara, 출처 Unsplash

2.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비트코인이 대중화되지 않아서, 교육을 해줄 전문가를 어렵게 구했던 기억이 남.

3. 금융자산의 보안을 강화시키는 블록체인 공부가 목적이었지만, 강의와 토론의 대부분이 비트코인 이야기였었음.

4. 강사는 자기한테 배운대로 비트코인 지갑을 만들고,주소를 이메일로 보내주면 비트코인 몇개를 넣어주겠다며 교육을 끝냄.

5. 바쁘고 귀찮아서 안 만들었음.

6. 최근 대화과정에서 우연히 이 에피소드가 기억났고, 갑자기 그때 강사가 비트코인을 정말 보내줬는지 궁금해졌음.

7. 같이 교육을 받았던 동료에게 물어보니, 비트코인 3개를 넣어줬다고 함.

8. 당시 비트코인 1개 가격이 5달러 정도라, 한 명당 15달러어치를 넣어준듯함.

9. 이천 달러에 가까운 강사비를 받고, 10명도 안되는 사람에게 교육을 해주다 보니, 그 정도 지출은 부담이 없었을듯함.

10. 비트코인 3개를 받은 동료는 비트코인이 400달러(50만 원) 정도 올라가자 팔아서 여름휴가를 갔다고 함.

11. 왠지 마음이 편안해졌음.

12. 같은 강사가 2년 뒤 강의를 한 번 더 왔었음.

13. 그때 강사는 이더리움을 추천했었음.

14. 당시 이더리움 가격이 2달러안쪽이었던 기억이 남.

15. 당시 교육을 해줬던 전문가도 아직 강의를 다니고 있음.

16.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을 오래 보유하지않고 적당한 수익을 먹고 팔았을것 같음.

17. 나도 당연히 안 샀음.

18. INTP는 귀찮은거 싫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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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정리해 봅니다. 네이버 메르의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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