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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다르게 보기(feat 연금개혁, 연어 무한리필)

메르

2024.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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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장기전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럴 때는 과거를 다시 한번 돌아보면서, 미래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경과를 재조합 해봅니다.

1. 오래전 러시아의 본진은 현재 우크라이나 수도인 키예프에 있었음.

2. 1240년 몽골군이 러시아에 침입해서 키예프는 쑥대밭이 되었고, 러시아는 본진을 동북부로 이전함.

3. 동북부로 이전한 본진이 현재 러시아 수도인 모스크바임.

4. 이렇다 보니, 러시아 사람들은 원래 수도가 있었던 우크라이나를 같은 어머니를 가진 작은동생 정도로 생각하고 있음.

5. 두 나라의 기원이 모두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예프에서 시작을 했고, 이중 일부가 모스크바로 이동을 했으니,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한 몸이라는 시각이 강한 것임.

6. 푸틴이 소련을 만든 공산주의의 원조인 레닌을 탓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음.

7. 레닌이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와 한 나라로 만들어도 문제가 없었는데, 별도의 자치 정부를 만들어 문제의 원인을 만들었다는 것임.

8.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영토로 유지되다가, 1차 세계대전 때 러시아가 망하자, 소련과 폴란드가 분할해서 점령함.

9. 1932년, 공산주의 소련이 지배한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큰 문제가 발생함.

10. 소련의 스탈린이 우크라이나 농촌지역을 집단농장으로 전환한 것임.

11. 우크라이나 농민들은 가지고 있는 모든 가축과 식량 등을 집단농장에 다 내놓고, 공동 경작을 해서 배급을 받고 먹고살라고 함.

12. 농지와 가축, 식량의 소유권은 국가가 가지고, 집단농장에서 나오는 산출물은 국가가 균등하게 나누는 공산주의 정책이었음.

13. 농민들은 농사를 짓지 않는 도시 노동자들까지 먹여 살려야 했고, 열심히 일해도 개인에게 추가로 떨어지는 것은 없었음.

14. 농민들은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저항하기 시작했는데, 먹어치우거나 팔아버리는 것이었음.

15. 감자와 소금은 집단농장 정책이 발표된 후 이틀 만에 모두 판매되었고, 농사에 필요한 소, 돼지 등 가축들을 잡아먹기 시작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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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하필 이 타이밍에 2년 연속 역대급 대흉년이 와버림.

17. 우크라이나 주민들은 강제로 집단농장에 수용되었는데, 집단농장에는 농사지을 가축도 없고, 다음 추수 때까지 먹고 살 식량도 없는 데다, 2년 연속 흉작까지 와버리니, 우크라이나의 5천만 명 인구 중 1천만 명이 굶어 죽는 참사가 발생한 것임.

18. 대략 인구의 20%가 굶어 죽게 됨.

19. 우크라이나 농업지역 주민들이 러시아에 치를 떠는 배경임.

20. 폴란드가 지배하던 지역은 집단농장 때문에 대규모로 굶어죽는 일은 없었음.

21. 우크라이나 도시지역과 농촌지역이 러시아에 대한 감정이 다른 이유임.

22. 2차대전이 일어나자 폴란드가 독일에 패망하고, 독일은 다시 소련(현재 러시아)에게 패망함.

23. 폴란드가 먹었던 우크라이나 지역은 자연스럽게 승전국 소련 땅이 된 것임.

24. 소련 입장에서는 과거 원래 자기 땅이었던 것을 되찾은 것이었음.

25. 2차대전의 승전국들은 독일을 동독과 서독으로 반으로 갈랐고, 소련은 동독을 실질적으로 지배함.

26.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며 동독과 서독이 통일이 될 때, 서독과 미국은 동독을 지배하던 소련에게 비밀 약속을 하나 하게 됨.

27. 통일된 독일의 국경 동쪽으로는 더 이상 서방국가들이 영역을 확장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었음.

28. 폴란드, 체코, 헝가리, 불가리아, 슬로바키아 등은 미국과 EU가 건드리지 않겠다는 말이었음.

29. 이 약속을 믿고 소련은 동독에서 철수를 했고, 독일은 통일이 됨.

30. 이 비밀 약속을 하는 시기, 동독에 파견 나가 협상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본 소련 KGB 요원이 있었음.

31. 푸틴임.

32. 미국과 독일은 소련과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음.

33. 소련이 동독에서 철수하고 8년이 지난 1999년, 폴란드, 체코, 헝가리가 나토에 가입했고, 2004년에는 불가리아와 리투아니아까지 나토로 넘어감.

34. 푸틴이 더 이상 미국과 EU의 약속에 속지 않겠다고 분노하는 지점임.

35. 수백 년 동안 크림반도는 여름철 기후가 쾌적해서 러시아 황제를 비롯한 귀족들과 공산당 간부들이 즐겨 찾는 소련의 휴양지였음.

36.1954년, 소련의 흐루쇼프(흐루시초프)는 크림반도를 소련 연방 소속인 우크라이나에게 뜬금없이 넘겨줌.

37. 당시 흐루쇼프는 스탈린이 죽은 뒤 벌어지고 있는 권력투쟁에서 우크라이나 공산당의 지지가 필요하던 때였음.

38.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에게 넘겨줬다고 해도, 어차피 소련 안에서 이동한 것이라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기도 했음.

39. 소비에트 연방(소련)이 해체되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별개의 국가로 갈라지자 상황이 복잡해짐.

40. 크림반도에는 세와스토폴이라는 지중해 지역에서 미국과 나토의 해상 무력을 견제하는 군항이자 휴양지가 있었음.

41. 세와스토폴은 가장 추운시기인 2월달에도 평균 온도가 영상 3도 정도이고, 가장 더운 7월이 23도 정도라서, 1년내내 바다의 온도는 영하로 내려가지 않았으며,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 합쳐진 소련 최고의 휴양지였음.

42. 세와스토폴은 겨울에도 바다가 얼지 않아 러시아 흑해함대가 기항으로 쓰고 있었는데, 우크라이나 땅이 돼버린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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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소련이 붕괴하며, 우크라이나가 분리되는 과정에서 세와스토폴은 2042년까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임대계약 체결함.

44. 러시아 해군이 사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러시아 유일의 부동항이 우크라이나 소유라는 점이 러시아의 신경을 계속 건드림.

45. 우크라이나 정계는 친 유럽파와 친러시아파가 각축을 하는 상황이었음.

46. 2013년, 빅토루 야누코비치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친러 정책에 반발하는 시위가 일어남.

47.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EU 가입을 포기하고, 러시아와 우호협력조약을 맺은 것이 원인이었고,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친 러시아 정권을 몰아내고 친서방 정권을 수립하게 됨.

48. 우크라이나는 세바스토폴에 주둔 중이던 흑해함대의 임대료를 4배까지 인상하려고 하며, 러시아의 신경을 계속 건드림.

49. 2014년 우크라이나는 우크라이나어와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던 러시아어의 사용을 금지함.

50. 동부 지방, 특히 크림반도에는 우크라이나인보다 훨씬 많은 러시아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러시아어 사용을 금지한다는 발표는 우크라이나를 폭넓은 러시아의 일부로 생각하고 있던 푸틴에게 그냥 둬서는 안되겠다는 확신을 심어준 사건이었음.

51. 2014년 동계 올림픽이 러시아 소치에서 개최됨.

52. 그 당시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아주 험악한 상황이었음.

53. 2013년 6월 23일은 미국 국가 안보국(NSA) 소속 분석관 스노든이 NSA와 CIA로부터 훔쳐낸 미국 정보부의 모든 것이 담겨있는 정보를 가지고 홍콩에서 러시아 모스크바로 가는 비행기를 탄 날이었음.

54. 푸틴은 스노든의 망명을 허용했고, 그로부터 미국 첩보기관의 수많은 정보들을 입수하게 됨.

55. 2013년 9월로 예정된 모스크바에서의 오바마 대통령과 푸틴의 정상회담은 취소되었고, 시진핑 등 각국의 정상이 참석한 소치 동계 올림픽에 미국은 제대로 된 인물을 참석시키지 않았던 것임.

56. 러시아는 동계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크림반도에 전투부대를 진입시켰고, 크림반도 주민들에게 러시아 합병 투표를 진행함.

57. 크림반도 주민들은 친 러시아인들이 대부분이라 96%가 러시아와 합병에 찬성 표를 던지며 크림반도는 러시아로 넘어 감.

58.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하자 미국과 EU는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시작함.

59. 푸틴과 푸틴의 측근들에 대한 해외자산이 동결되었고, 러시아 국민들이 많이 먹는 연어 등 수출규제가 시작됨.

60. 연어 수출규제로 노르웨이산 양식 연어가 남아돌아 연어 가격이 급락했고, 싼 가격에 한국으로 연어를 수출하면서, 한국에서는 연어 무한리필 전문점이 여기저기 생기는 계기가 되기도 함.

61. 러시아의 에너지 자원을 겨냥하는 제재도 진행됨.

62. 당시에도 유가가 높았던 시기라, 배럴당 100달러 가까이 올라온 유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러시아가 현재 석유를 생산하는 것은 건드리지 못하고, 새로운 유전개발 등을 제한하는 쪽에 초점을 맞춤.

63. 2014년 5월. 수많은 정부 각료들과 기업가들을 대동하고 푸틴이 상하이에 나타남.

64. 푸틴이 국빈 자격으로 시진핑의 초대를 받은 것임.

65. 푸틴과 시진핑은 2013년 이후 여섯 번이나 만났고, 상하이 회동은 일곱 번째 만남이었음.

66. 푸틴은 시진핑에게 "우리는 해당 지역과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 모두에서 똑같은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이 절대적 주도권을 쥐고 있는 국제적 체제에 힘을 합쳐 대항하기로 했다"라며, 2 대 1로 미국과 붙어보자는 제안을 함.

67. 이때 양국의 논의사항 중 가장 중요한 문제는 천연가스였음.

68. 중국과 러시아는 30년 동안 4천억 달러에 달하는 천연가스 거래를 합의했고,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방법으로 중국과 러시아 간 시베리아의 힘(Power of Siberia)이라는 2,100킬로 길이의 천연 가스관 건설에 합의를 함.

69. 2013년 중국 국가주석에 오른 시진핑의 첫 해외순방지가 모스크바였고, 중국은 공산품과 소비재를, 러시아는 석유와 천연가스등 에너지와 원자재를 교류하는 절친이 되기 시작함.

70.2019년 12월 2일.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파이프라인을 통해 천연가스가 공급되는 시베리아의 힘 건설이 완공됨.

71. 푸틴은 헌법을 개정하면서 2036년까지 대통령 임기를 연장했고, 시진핑은 3연임을 시작하며 영구집권을 시작함.

72. 임기가 없어진 두 오너가 힘을 합쳐서, 짧으면 4년, 길면 8년이 한계인 미국의 전문경영인 대통령에 맞서기 시작한 것임.

73. 우크라이나는 수시로 여야가 정권을 교대로 잡는 나라임.

74. 우크라이나는 대기근을 겪었던 농업지역과 러시아와 지리적으로 가까워서 산업이 성장한 지역이 합쳐서 한 나라가 됨.

75. 농업지역은 반 러시아 친유럽, 산업 지역은 친 러시아 구도가 됨.

76. 두 세력 간 인구수가 비등해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선거를 하면 친러 정권이 집권하기도 하고, 반러 정권이 집권을 하기도 했음.

77.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는 전통적인 친러 지역임.

78. 크림반도 주민들 대부분이 우크라이나어 가 아니라 러시아어를 쓰고 있고, 전통적으로 친러 지역이었음.

​79. 2014년, 크림반도 주민들은 크림자치공화국으로 독립한 후 러시아에 편입해 버린 것이 우크라이나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됨.

80. 친러 쪽으로 집단 투표를 해주던 크림반도 주민들이 러시아로 가버리니, 친 러시아 표가 줄고 반러시아 표가 자연스럽게 늘어남.

81. 1인 1표를 행사하는 민주주의 투표 제도에서 팽팽하던 친러와 반러 진형이 반러 쪽으로 힘이 몰리게 된 것임.

82. 반러 세력이 인구수로 우세하게 된 우크라이나는 2019년 2월에 나토 가입을 헌법에 명시를 함.

83. 푸틴은 이왕 이렇게 된 바에는 크림반도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친러 지역은 모두 러시아 땅으로 만들자는 결정을 하게 된 것임.

84. 우크라이나의 언어 사용 분포를 다시 한번 보기 바람.

85. 일단 가장 아래쪽의 푸른 꼭지가 크림반도임.

86. 전체가 푸르다는 것은 주민 대부분이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있는 곳이라는 말이고 대표적인 친러 지역임.

87. 푸틴은 1차로 크림반도를 러시아로 가져갔고, 다음 단계로 우측의 푸른색이 많은 친러 지역을 공략함.

88. 그곳이 돈바스 지역임.

89. 러시아어가 기본 언어인 지역과 현재 러시아가 점령한 지역이 거의 일치를 하고 있음.

90. 현재 점령지역을 유지하고 우크라이나와 휴전을 한다면, 푸틴의 목표는 달성이 되는 것임.

91. 푸틴은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을 보류하고, 현 점령지를 유지하는 선에서 휴전을 하자"라는 메시지를 계속 서방에 던지고 있음.

92.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우발적인 것이 아님.

93. 푸틴은 크림반도를 먹은 이후, 달러 비중을 낮췄고, 위안화와 유로, 금 보유량을 과하다 싶을 정도로 높여왔음.

94. 우크라이나에 빠르게 항복을 받아내서 기정사실로 만든 후, 미국 및 나토와 경계선을 다시 재설정 하려고 한 것임.

95. 우크라이나를 형식적으로는 중립국, 실질적으로는 러시아의 영토로 만들고 나면, 우크라이나에서 유럽은 탁 트인 평원이 펼쳐짐.

96. 우크라이나에 탱크를 쟁여놓게 되면 과거 나토가 두려워했던 수만 대의 러시아 탱크가 유럽 평원에 밀려드는 기갑 웨이브가 가능해지는 것임.

97. 푸틴의 오판은 본인이 보고받고 알고 있던 러시아와 실제 현장의 러시아가 많이 달랐던 것이었음.

98. 1인 독재로 장기집권을 하다 보니, 푸틴 옆에는 딸랑거리는 아첨꾼들만 남아있어 정확한 실상이 보고되지 못 했던 것임.

99.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에는 다른 사정도 있었음.

100. 1인 독재 장기집권을 하는 푸틴의 힘은 80%가 넘는 러시아 국민들의 지지율임.

101. 그런데, 푸틴의 지지율이 60%대로 떨어진 때가 있었음.

102. 연금개혁 때문임.

103. 60세부터 받을 수 있었던 연금을 65세부터 받을 수 있게 변경하자 지지율이 떡락한 것임.

104. 술을 좋아하는 러시아 남자의 평균수명이 62세인데, 65세부터 연금을 준다는 것에 국민들, 특히 러시아 남자들이 분노하게 됨..

105.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자 러시아 국민들은 연금개혁 불만을 외부로 돌리며 결집했고, 푸틴은 다시 80%대 지지율을 회복함.

106. 사실 미국이나 유럽 입장에서는 돈바스 지역이 우크라이나 땅이든, 러시아 땅이든 크게 관심이 없음.

107. 유럽과 영토가 붙어있는 우크라이나는 반대편쪽이기 때문임.

108. 미국도 이미 얻을 수 있는 실리를 모두 얻었음.

109. 존재감이 사라져가던 나토가 살아났고, 유럽과 러시아 간 천연가스 공급이 끊기면서 주체할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셰일가스를 유럽에 고정 공급할 수 있게 된 것임. ​

110. 우크라이나는 원래 군사력이 강한 나라였음.

111. 1991년, 러시아로부터 독립할 때만 하더라도, 78만 병력에 세계 3위의 핵무기 보유국이라는 막강 화력을 보유하고 있었음.

112. 우크라이나가 세계 3위 핵무기 보유국이라는 사실을 서방 각국이 걱정하기 시작함.

113. 핵무기 발사 수단이 없다고 하더라도, 컨테이너 등으로 운반 가능한 핵무기 몇 개가 관리가 안 된 채 테러범들에게 흘러가서, 뉴욕이나 런던 등에서 터질 수 있다는 걱정을 하게 된 것임.

114. 우크라이나도 핵무기와 80만 군대를 유지할 예산이 부족하다 보니, 러시아, 미국, 영국과 합의해서 핵 포기와 군축을 선언하게 됨.

115. 러시아, 미국, 영국과 우크라이나 간 합의 내용은 우크라이나가 핵 포기를 하면 러시아, 미국, 영국이 연대해서 지켜주겠다 것이었음.

116. 우크라이나는 이 합의를 믿고 수천 기의 핵탄두를 모두 해체해서 비핵국이 되었고, 6,500대의 탱크를 776대로 줄이고, 1,500대의 전투기를 208대로 줄이는 등 군축을 이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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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핵무기가 완전히 없어졌고, 군축까지 착실하게 이행한 우크라이나는 전력이 크게 약해졌지만, 합의 상대방인 러시아는 침공을 했고, 미국과 영국은 지켜준다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음.

한 줄 코멘트. 연금개혁은 필요하지만, 집권당이 되면 다음 정권으로 개혁 타이밍을 넘기고 싶어 함. 천하의 푸틴도 연금개혁 때문에 고생을 할 만큼 표가 안되는 일이기 때문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미국, 영국의 합의에서 보듯이, 국가 간 약속은 립 서비스에 불과할 수 있음.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으로 한국에 연어무한리필 전문점이 생기는 것을 보듯이 세상은 연결되어 돌아가고 있음.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정리해 봅니다. 네이버 메르의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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