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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의 생각

아파트 근황(feat 1기 신도시 재건축, 선도지구, 전세, 분당vs일산 )

메르

2023.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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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newsis.com/view/?id=NISX20231228_0002573563&cID=10401&pID=10400

국토부, 내년 하반기 1기신도시 선도지구 지정한다

[서울=뉴시스] 고가혜 기자 = 국토교통부가 지난 26일 공포된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내년 4월27일부터 시행됨에 따라, 시행령 제정·마스터플랜 수립·선도지구 지정 등 2024년 주요 추진과제도 차질 없이 이행하겠다고 28일 밝혔다

www.newsis.com

 

 

1기 신도시가 내년에는 화제가 될듯합니다.

한국의 주택 이야기로 시작해서 1기 신도시까지 주절주절해보겠습니다.

재건축 부분만 보시려면 163번부터 읽으시면 되고, 연말에 느긋하게 읽으시게 길고 멀리 돌아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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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시대 중앙관료들이 받는 처벌 중에 사형 다음급의 강한 처벌은 귀양이라는 형벌이었음.

2. 귀양은 고향으로 가는 귀향이 원말로, 곤장 100대를 친 후 죗값에 따라 2천 리(785km)~3천 리(1,178km) 먼 곳으로 보내는 형벌이었음.

3. 명나라 법전에서 형벌을 가져오다 보니, 3천 리(1,178km)라는 귀양 거리가 나왔는데, 국토가 작아서 남해안이나 함경도 쪽으로 보내는 정도였음.

4. 당시 귀양지 중 가장 험한 곳은 함경도에 있는 삼수군과 갑산군이었음.

5. 삼수군과 갑산군이 개마고원 중심부에 있어 겨울에 매우 춥고, 경작지도 별로 없어 귀양살이가 헬 난이도 지역이 됨.

6. 아주 먼 거리를 간다는 표현으로 삼수갑산 간다는 말이 나온 이유임.

7. 남해안 쪽으로도 많이 내려감.

8. 정약용은 전라도 강진으로 갔고, 정약전은 흑산도, 김정희와 송시열은 제주도 등으로 가게 됨.

9. 귀양은 무기징역과 비슷함.

10. 정약용은 18년을 강진에서 귀양살았고, 윤선도는 함경도 경원, 부산 기장, 경상도 영덕, 함경도 삼수, 전라도 광양을 돌며 25년을 귀양살이해서, 조선시대 귀양 원탑을 찍게 됨.

11. 귀양이 시한이 없는 무기징역이라, 귀양 가는 사람들은 서울로 돌아오기 힘들다는 생각에 서울 집을 팔고, 귀양지로 내려가는 게 보통이었음.

12. 임금이 바뀌거나 화가 풀리고, 집권 파벌이 달라지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귀양을 취소하고 서울로 복귀하는 일이 생각보다는 많이 생기게 됨.

13. 문제는 집이었음.

14. 조선시대에도 서울 집값이 빠르게 올랐음.

15. 귀양지에서 서울로 복귀를 했는데, 귀양가면서 집을 판 돈으로 서울에 집을 다시 사려고 하면 그 사이 집값이 올라서 돈이 부족한 것임.

16. 귀양을 가더라도 서울 집을 팔지 않고, 집값의 7~80%에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고 귀양을 가는 방법이 나오게 됨.

17. 전세제도의 시작을 이것으로 보고 있음.

18. 다산 정약용도 서울 명동성당 근처 명동에서 전라남도로 귀양을 가게 됨.

19. 국가고시였던 과거시험에서 전국 2등으로 급제하다 보니, 부유한 처가를 만났고, 처가 도움으로 남양주에서 명동으로 인 서울에 성공한 것임.

20. 다산 정약용은 인 서울 또는 수도권 애창론자였음.

21. "혹여 벼슬에서 물러나더라도 한양 근처에서 살며 안목을 떨어뜨리지 않아야 한다."라며 인 서울을 이야기했고, "절대 서울에서 10리 이상 바깥으로 나가지 마라"라며 인 서울이 힘들면 수도권에 거주하며 인 서울을 노리라는 편지를 자녀들에게 보내고는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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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다산 정약용은 귀양이 풀렸지만, 서울 집값이 그사이 많이 올라 서울로 복귀하지 못하고, 남양주로 복귀해 마음이 많이 상했었다고 함.

23. 남양주의 다산 신도시라는 명칭이 정약용에게는 그렇게 기분 좋은 이름이 아닌 듯도 한 이유임.

24. 당시 서울은 인구에 비해서 집이 많이 부족했음.

25. 정조 때 훈련대장이었던 여연겸이라는 사람은 10칸짜리 집을 30칸으로 불법 개조해서 30집에 세를 주기도 함.

26. 전세 사기도 벌어짐.

27. 매매가격이 350냥짜리 주택을 400냥에 전세를 주는 식으로 자기 돈 없이 전세를 늘려 나가는 깡통 사기 사건도 벌어짐.

28. 서울의 집값이 계속 오르다 보니 전세를 턱없이 올려도 들어올 사람들이 넘쳐나서 대부분의 깡통전세는 훈훈하게 마무리가 됨.

29. 요즘의 깡통전세 사기도 집값과 전셋값이 계속 올랐으면 사고로 가지 않았을지도 모름.

30. "한양의 셋집에 동산 뜰이 비었더니, 해마다 울긋불긋 온갖 꽃이 피어나네."라는 말은 퇴계 이황 문집에 나오는 말임.

31. 퇴계 이황이 서울 셋집에 살던 전세 임차인이었듯이, 조선에 전세제도가 점점 보편화되기 시작함.

32. 임진왜란 이후, 조선과 일본의 관계는 한동안 나쁘지 않았음.

33. 임진왜란 이후 국가를 안정시켜야 했던 조선 입장에서 일본과의 군사 분쟁을 예방하는 것이 중요한 외교 현안이었음.

34. 일본 막부의 쇼군이 즉위할 때마다 조선은 대규모 사신단을 보내서 축하를 해주는 등 일본을 다독거려왔음.

35. 일본의 쇼군도 조선 사신단 접대를 중요 행사로 대하는 등 외형적으로는 우호국 관계가 한동안 유지됨.

36.1853년, 미국의 페리 제독이 전함을 끌고 와서 일본의 개방을 요구했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막부의 쇼군이 흔들리게 됨.

37. 쇼군을 대체하는 천왕을 앞으로 내세운 하급무사들로 신정부가 수립됨.

38. 신정부는 정권이 바뀌었다는 통지를 조선에 보내게 됨.

39. 조선은 천황이라는 표현이 과한 점, 외교문서의 형식이 과거와 다른 점, 문서에 날인한 도장이 바뀐 점등을 들어서 문서를 접수하지 않았음.

40. 이 일을 중개한 쓰시마 번주가 수차례 일본 정권이 바뀌었다는 것을 설명했지만 개무시만 당하는 상황이 계속됨.

41. 일본 신정부 인사들은 천황을 문제 삼은 조선에 분개했고, 정한론이 대두되기 시작함.

42. 정한론은 미국에 당했듯이, 우리도 조선을 무력으로 개항시켜 무역 소득을 얻고, 필요하면 군대를 파견해서 조선을 점령하자는 주장이었음.

43. 신정부에는 막부를 무너뜨릴 때 실질적인 무력을 담당했던 하위계급 일본 무사들이 많이 남아있었음.

44. 이들은 칼부림 외에는 제대로 할 줄 아는 일이 없었고, 문서를 다루는 행정적인 일은 하지도 못하고 하기도 싫어했음.

45. 집단의 스트레스가 커지면 집단행동이 일어나기 마련임.

46. 온건파가 주류를 차지했던 일본은 정한론을 외치는 무사집단을 대만으로 원정을 보내는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풀어주려고 함

47. 1874년, 일본은 온건파가 밀려나고 강경파들이 주도세력이 됨.

48. 1875년, 일본은 전투함인 운요호를 조선으로 보내서 조선을 겁박하기 시작함.

49. 1875년 5월, 부산에 도착한 운요호는 조선 정부와 협의 없이 남해안과 서해안을 거쳐서 9월에는 강화도로 올라오기 시작함.

50. 결국 강화도와 영종도에서 이것을 막는 조선군과 교전이 벌어졌고, 35명의 조선군이 전사하게 됨.

51. 당시는 강화도를 지나면, 한강을 통해 서울로 배가 진입할 수 있었음.

52. 일본 전함이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 한양에 포격을 하면, 조선군이 막을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어 조선 정부는 큰 충격을 받게 됨.

53. 조선은 청나라에 도움을 요청하게 됨.

54. 청나라는 미얀마에서 영국과 마찰이 있었고, 베트남에서 프랑스와 교전상태에, 러시아와도 전쟁 직전이라 조선에 신경을 쓸 틈이 없었음.

55. 청은 일본과 전쟁을 할 타이밍이 아니라고 판단해서, 일본과 조약을 권유하는 문서를 조선에 보내게 됨.

56. 조선과 일본은 강화도에서 회담을 열고, 합의를 하게 됨.

57. 주요 합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음.

- 조선국은 자주 국가로서 일본국과 평등한 권리를 보유한다.

- 현재 일본과 교역을 허용하고 있는 부산 초량 지역 외에 2곳의 교역 허용지역을 추가한다.

- 이곳에 일본인이 임차해서 가옥을 짓거나 기존 주택에 임시로 거주할 수 있게 한다.

- 일본인이 조선에서 죄를 범하면 일본에서 재판받게 하고, 조선인이 일본에서 죄를 범하면 조선에서 재판받게 한다.

- 조선은 섬과 암초가 많으므로, 일본 항해자들이 조선 해안을 측량해서 암초의 위치와 수심을 재고, 이것을 조선과 공유한다.

58. 외견상 크게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숨겨진 의도가 일부 있는 조약이었음.

59. 한국의 해안을 마음대로 측량하겠다는 것은 예상되는 청일전쟁을 대비하는 준비작업이었던 것임.

60. 기존 부산 초량 외에 추가된 2곳의 교역 허용지역은 인천과 원산이었음.

61. 합의 조항에는 교역 허용지역에 일본인이 땅을 임차해서 가옥을 짓거나, 기존 주택에 임시로 거주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이 있었음.

62. 일본인들을 임차인으로 한 100일에서 1년짜리 전세 계약이 시작되었고, 일본인 뿐만 아니라 조선 민간에 전세제도가 퍼져나가게 됨.

63. 한국에서 전세가 다시 유행한 것은 1970년대임.

64. 70년대의 한국은 은행보다 사채시장이 활성화되어 있었음.

65. 경제가 성장하면서 개인과 기업의 자금 수요는 늘어났지만, 사람들은 은행에 예금을 잘 하지 않았음.

© mrthetrain, 출처 Unsplash

66. 정부가 공금리라는 제도를 운용해서 그랬음.

67. 공금리는 은행이 받는 대출금리와 예금금리를 정부가 정해주는 것임

68. 공금리가 시중금리보다 많이 낮다 보니, 개인들은 은행에 예금을 잘 안 했고, 저금리 은행 대출을 받으려고 은행에 줄을 서게 됨.

69. 대출이 특혜가 되는 시기였음

70. 1970년에 대한상공회의소가 조사를 해보니 대기업이 은행에 빌리는 공금리가 평균 16% 수준이었음

71. 특혜금리가 16% 정도다 보니, 개인이 빌리는 돈이나, 명동 등에서 기업이 빌리는 사채 금리는 그보다 훨씬 높았음.

72. 사채 금리는 보통 월 이자로 계산했는데, 3부가 기본이고 5부 이자도 상당 수준 운용되었음.

73. 5부는 월 5%라는 말로, 1년 이자로 계산하면 연 60% 이율임.

74. 주택 가격이 빠르게 올라가고, 시장금리가 높다 보니, 집을 빌려주고 월세를 받는 것은 집주인에게 돈이 안되는 임대 방식이 돼버림.

75. 전세로 임대를 줘서 전세금으로 다른 집을 사든지, 아니면 개인 간 사채 등에 빌려주는 게 월세보다 훨씬 돈이 되는 것임.

76. 1970년대 산업화가 빠르게 진전되며, 농촌의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올라오자, 주택 수요가 공급보다 많아 가격을 자극하게 됨.

77. 방 한 칸 전세로 시작해서, 조금씩 큰 전셋집으로 옮겨가는 방식으로 종잣돈을 모은 뒤,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음.

78. 집주인도 기존 주택을 전세 줘서 목돈을 마련하고, 그 돈으로 다주택자가 되는 방식이 부자가 되는 가장 빠른 방법이었음.

79. 전세제도는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도입한 것이 아니라, 집주인과 세입자들 간의 이해관계가 이렇게 일치해서 나온 제도인 것임.

80. 1989년, 노태우 정부가 세입자를 보호한다고 전세 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리자 전세금이 유례없이 폭등하게 됨.

81. 1989년 서울의 전셋값은 29.6%가 올랐고, 1990년에는 23.7%가 오르게 됨.

82. 전세금이 오르자, 집값이 자극받아 오르기 시작했고, 정부는 신도시라는 이름의 대단지 신규주택 건설을 급하게 진행하게 됨.

83. 분당, 평촌, 산본, 일산, 중동의 1기 신도시와 지방신도시들이 빠르게 진행됨.

84. 1991년 9월 분당, 1992년 3월 평촌, 4월 산본, 8월 일산, 12월 중동에 총 30만세대, 인천 연수, 대전 둔산,부산 해운대 좌동, 대구 칠곡, 시지, 지산범물, 성서, 광주 상무, 첨단지구 등의 지방 거점 신도시 170만세대 입주가 완료되자 집값과 전셋값이 안정되기 시작함.

85. 2000년에 접어들면서 부동산 가격 상승이 주춤한 상황에서 시장금리가 점점 내려가기 시작함.

86. 전세를 받아 은행에 넣어도 돈이 안되기 시작하자 월세 전환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함.

87. 반전세, 월세 등의 비중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하며 시장이 전세에서 월세로 바뀌기 시작하는 2006년, 전세자금 대출이 나옴.

88. 전세제도가 점점 인기를 잃어가며 반전세를 거쳐서 월세로 옮겨가던 시기에 전세자금 대출이 나오자, 다시 전세 비중이 올라가기 시작함.

89. 월세를 내는 것보다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 이자를 내는 것이 임차인 입장에서 이익이 되었고, 돈이 부족해서 다세대주택에 들어가려고 생각했던 신혼부부들이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 아파트로 들어가기 시작한 것임.

90. 한국에서 점점 사라져 갈 것으로 보이던 전세제도가 전세자금 대출로 살아나기 시작한 것임.

91. 전세자금 대출 확대는 2022년부터 아파트 가격 급락 시기에 깡통전세, 사기 전세, 역전세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시작되는 계기가 됨.

92. 현재 한국민의 가장 큰 관심사는 아파트임.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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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한국에 아파트는 서울이 경성이라고 불리던 1930년대에 등장하기 시작함.

94. 1930~40년대 경성에는 30여 개의 아파트들이 있었음.

95. 일제강점기 경성은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도시였음.

96. 1920년에는 25만 명이 거주했는데, 1945년에는 인구가 100만 명까지 늘어나게 됨.

97. 인구가 늘어나다 보니, 집은 부족했고, 경성의 집값과 월세가 폭등하기 시작함.

98. 집값과 월세가 폭등하니, 좁은 땅에 많은 가구가 살 수 있는 아파트들이 올라가기 시작함.

99. 1931년에 남산동에 미쿠니 아파트가 한국 최초 아파트로 준공되었고, 황금,녹천장,취산,창경,덕수,관수정,광희 아파트와 같은 한국 이름의 아파트와 미쿠니,히카리,토요타,스즈키,오타등 일본식 이름을 딴 아파트들이 준공되기 시작함.

100. 아파트 거주자는 당시 경성의 관청, 은행, 회사 등 각종 기관 등에 근무하는 직장인들이 많았고, 서울로 공부하러 온 좀 사는 집안의 학생, 카페 여급 등 다양한 사람들이 거주하는 공간이었음.

101. 일본이 중국과 중일전쟁에 돌입한 1939년 10월, 일본은 전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땅값과 집세를 1년 전인 1938년 가격으로 낮추게 하는 비상조치를 발동함.

102. 경성의 아파트들은 집세를 올려 받기 위해 호텔로 용도를 바꿨고, 신축은 주춤해진 상태에서 해방을 맞게 됨.

103. 충정,황금,국수장,취산,청운장,적선하우스와 함께 1930년에 한국 최초로 건축된 남산동 미쿠니 아파트는 현재까지 건재함.

104. 미쿠니 아파트는 외벽을 새로 마감하고, 창틀을 교체한 것 외에는, 최초 건축 시 만든 원통형 기둥 양식 등이 그대로 남아 있음.

105. 일제강점기 때 만든 아파트가 아직 사용되고 있는 것처럼, 아파트의 콘크리트는 세월이 갈수록 단단해지는 성질이 있음.

106. 배관 등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지, 콘크리트 자체는 100년이 가도 버티는 소재인 것임.

107. 연식이 좀 된 아파트 벽에 콘크리트 못을 한번 박아보면 오래된 콘크리트가 얼마나 단단한지를 느낄 수가 있음.

108. 1970년에 접어들면서,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서울로 몰려오면서 서울은 빠르게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하며 주택난을 겪기 시작함.

109. 서울 각지에 무허가 판자촌 등이 생겨나자,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시민 아파트가 만들어짐.

110. 서울시는 3년 동안 시민아파트 2,000동을 지어서 주택문제를 해결하려고 했고, 11평짜리 시민 아파트를 여기저기 건설하기 시작함.

111. 시공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중소 건설사들이 시공했고, 입주 1년도 안되어 시민 아파트인 와우아파트가 무너지는 참사가 일어나게 됨.

112. 다른 시민 아파트들도 부실시공이 많아, 서울시는 건설비의 몇 배에 달하는 보수 비용을 지출하며 서울시 재정난의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함.

113. 서울시는 시민 아파트에서 시작된 아파트의 부정적인 인식을 없애기 위해 쾌적한 고층 아파트를 계획했고, 동부 이촌동 등 한강변을 따라 아파트를 건설하기 시작함.

114. 반포에 3,786세대의 반포주공이 괜찮은 퀄리티로 지어져서, 시민 아파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도 점점 줄어들게 됨.

115. 70~80년대 아파트들은 나름 특징이 있음.

116. 입지가 환상적이며, 동 간격이 엄청나게 넓고, 복도식에 중앙난방, 지하주차장이 없고, 평수에 비해 작은방들이 많은 특징들을 가지고 있음.

117. 이 당시 아파트는 강도가 높은 특수 시멘트가 아니라 일반 시멘트로 지어지다 보니, 층별 바닥과 벽을 두껍게 만들고, 바닥에 콩자갈이라고 부르는 작은 돌을 채워서 층간 소음이 적은 편임.

118. 1990년 1기 신도시가 건설되기 시작하며 아파트에 변화가 일어남

119. 1기 신도시부터 지하주차장이 생기게 됨

120. 아직 1세대당 1주 차가 아니라 주차장이 부족하고, 단지 중간중간에 경비실이 있고, 1층 마당에 분리수거장 있는 등의 특징을 보여줌.

121. 수도관이 아연도금으로 되어 있어서 녹물이 나오는 경우가 많기도 함.

122. 1994년부터 수도관에 아연도금 강관 사용이 금지되면서 이후 건설되는 아파트의 녹물 문제는 줄어들게 됨.

123. 2005년 이전까지는 층간 소음과 관련한 규제가 없어 대부분 건설사들이 바닥 슬래브 두께를 120mm로 얇게 시공함.

124. 바닥 슬래브만 얇게 한 게 아니라, 바닥에 콩자갈을 깔지 않고 기포콘크리트를 사용해서 1990년대에 만들어진 아파트의 층간 소음이 가장 심함.

125. 1997년부터 1세대당 주차 면적 1대가 확보되며 주차난이 어느 정도 줄어들게 됨.

126. 2002년부터 20층 이상 고층 아파트가 보이기 시작했고, 개별난방, 아파트 입구에 번호키, 지하주차장과 바로 연결되는 계단식 엘리베이터 등이 생기기 시작했으며, 2000~2006년에는 1.5m의 일반 베란다가 아니라 2m의 광폭 베란다가 유행하며 실 사용 면적이 넓어지던 시기였음.

127. 2000년 6월, 아파트 경관을 향상시키기 위해 베란다 면적의 15%에 간이 화단을 설치하면 2m 베란다를 설치할 수 있게 허용했는데, 이것을 내부 확장해서 거실로 활용하는 사례가 많아지자 광폭 베란다는 2006년 사라지게 되었고, 이때부터 단열 관련 규제가 시작되어 난방 효율이 좋아지기 시작함.

128. 2006년이 되면서 아파트에 래미안, 롯데캐슬, e 편한 세상 등 브랜드가 보편화되며 아파트 이름이 외래어로 복잡해지기 시작함.

129. 아파트 저층을 대리석으로 마감하고, 문주라고 부르는 아파트 입구 기둥이 생기는 등 브랜드별 차이를 보여주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들이 시작됨.

130. 소형평수인 20평형대까지 화장실 2개가 기본 옵션이 되기 시작한 시기임.

131. 지상부를 공원으로 만들고 지하 주차장만을 넣는 지상부 공원화 단지 아파트가 2016년에 일반화되기 시작했고, 주상복합에서 일부 적용한 헬스장, 독서실, 사우나 등 아파트 커뮤니티 편의시설이 일반 아파트에 배치되기 시작함.

132. 이름을 길게 붙이는 게 유행되기도 함.

133. 숲과 조금이라도 붙어 있으면 포레, 학교가 근처에 있으면 에듀, 강이 보이면 리버뷰, 호수가 보이면 레이크, 중심가면 센트럴 등이 덕지 덕지 붙는데, 호수가 보이고, 학교도 근처에 있는 등 자랑할게 많으면 레이크리버뷰에듀카운티와 같이 이름이 길어지게 됨.

​134. 보통 아파트를 볼 때 몇 평형인지 넓이가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올 것임.

135. 그런데, 아파트를 제대로 보는 사람들은 볼륨으로 아파트를 봄.

136. 넓이만 보는 게 아니라, 층고라고 부르는 높이를 같이 보는 것임.

137. 볼륨 개념으로 보면 압구정 현대 아파트를 같은 평형으로 재건축 한다는 게 미친 짓이 아님.

138. 벽식 구조를 기둥식 구조로 바꾸고, 층고를 1.5배로 키우면 넓이는 그대로지만 볼륨이 커져서 개방감이 장난 아니게 좋아지는 것임.

139. 층고는 내 집 바닥에서 윗집 바닥까지의 높이고, 내부 층고(or 천정고)는 내 집 바닥에서 내 집 천정까지의 높이인데, 지금까지 대부분 아파트는 2.3미터 내부 층고의 벽식구조로 일률적으로 지어짐.

140. 벽식구조는 아파트의 벽이 천장을 받치는 기둥 역할을 해서 천장과 벽이 붙어 있는 구조임.

141. 천장과 벽이 붙어있다 보니, 위층의 진동이 아래층에 그대로 전달되고, 벽 자체가 1층부터 최상층까지 연결되어 있다 보니, 층간 소음을 일으키는 호수를 찾기도 힘듦.

142. 보와 기둥이 천장을 받치는 기둥식 구조는 보와 기둥이 추가되다 보니 40cm 정도 층고가 높아지게 되어 건설 단가가 비싸지만, 층간 소음이 기둥으로 분산되어 벽식보다는 층간 소음이 덜한 구조가 됨.

143. 건설사 입장에서는 층고가 높을수록 건축비가 많이 드는데, 기둥식으로 지었다고 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않고 어차피 분양은 잘 되니, 적은 건축비로 최대한 높은 층수를 뽑아낼 수 있는 벽식구조에 법에서 정한 최저층고에만 높이를 맞춰서 올리게 된 것임.

144. 아파트가 노후화되어 리모델링을 하려고 보니 이것이 문제가 됨.

145. 과거 아파트는 15층 이상만 스프링클러가 의무 설치였음.

146. 지금은 전층 스프링클러 설치로 법이 바꿔서 스프링클러를 추가설치하려면 7cm 정도 천정을 낮춰야 함.

147. 그만큼 내부 층고가 낮아진다는 말임.

148. 여기에 층간 소음 때문에 법이 또 바뀜.

149. 바닥 두께가 얇아 층간 소음이 심해진다고 보고 신축 아파트의 바닥 두께가 21cm 이상이 되게 법을 수정함.

150. 90년대 지은 아파트는 바닥 두께가 12cm 정도였는데, 층간 소음이 이슈가 되면서 바닥 두께가 계속 두꺼워져 온 것임.

151. 2014년에는 바닥 소음 기준이 더 강화됨.

152. 21cm 이상만 바닥 두께가 되면 통과되던 게, 이때부터는 실제 아래층 소음을 측정해야 함.

153. 개포 8단지는 바닥 두께가 23cm가 되었고, 반포 1단지는 26cm까지 두꺼워짐.

154. 최근 국토부는 건물을 다 지은 뒤 아래층 소음을 현장에서 측정한 후 통과되어야 준공승인을 해주겠다고 하니, 건설사들이 난리가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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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 잡자”… 정부 고강도 조치에 건설업계 비상 - 충청투데이

[충청투데이 김성준 기자] 정부가 층간소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강도 대책을 꺼내든 가운데 건설사들은 층간소음을 낮추기 위해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정부의 층간소음 해결 대책에는 층간소음 검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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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법은 이미 2018년에 강화된 것이고, 이것을 철저하게 적용하겠다고 하니, 자신이 없는 건설사들이 난리가 난 것임.

156. 바닥 두께 등의 기준이 강화되다 보니, 신축 아파트는 층간 소음 등 환경이 점점 개선되고 있음.

157. 문제는 기존 아파트들임.

158. 기존 아파트를 리모델링 하면, 스프링클러나 바닥 두께 등으로 내부 층고가 20cm 가까이 낮아져서 갑갑한 높이가 되게 됨.

159. 신축 고급 아파트의 내부 층고는 높아져 가고 있음.

160. 성수동 아크로 서울 포레스트는 3.3미터 층고로 공급되었고, 세종시는 기본 층고를 2.3미터가 아니라 2.4미터로 올림.

161. 이렇게 내부 층고가 높아지는 추세인데, 2.3미터의 내부층고 조차 스프링클러와 바닥 두께 때문에 2.1미터 급으로 낮춰야 하는 기존 노후 아파트 리모델링은 갑갑하게 되는 것임.

162. 일산 같은 1기 신도시들의 리모델링이 힘든 이유임.

163. 리모델링이 힘들면, 대안은 재건축인데, 재건축은 다른 문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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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 내년 하반기 1기신도시 선도지구 지정한다

[서울=뉴시스] 고가혜 기자 = 국토교통부가 지난 26일 공포된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내년 4월27일부터 시행됨에 따라, 시행령 제정·마스터플랜 수립·선도지구 지정 등 2024년 주요 추진과제도 차질 없이 이행하겠다고 28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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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아파트를 재건축하는 데는, 평당 1500만 원 내외의 건축비가 들어감.

165. 국민주택 규모(85제곱미터 이하, 30평형대)는 5억 원에 가까운 재건축 공사비 용이 들어간다는 말임.

166. 재건축이 끝날 때까지 몇 년간 다른 곳에 이주를 해야 하는 비용 등 기타 비용도 꽤 많이 들어감.

167. 재건축 지역의 신축 아파트와 구축 아파트 가격차이가 중요한 이유임.

168. 내가 사는 아파트 가격이 5억인데, 바로 옆에 신축 아파트가 8억에 분양되었다고 가정을 해봄.

169. 그냥 옆에 신축 아파트를 사면 8억이면 되는데, 몇 년간 이주까지 해가면서 5억짜리 아파트에 5억 건축비를 들여서 신축 아파트를 가지는 것은 타산이 안 맞기 때문임.

170. 기존 아파트를 재건축하는데 5억 정도 비용이 들어가는데, 신축 아파트와 가격 차이가 크게 나지 않으면 재건축 사업성이 나오지 않는 것임.

171. 재건축이란 1,000세대가 살던 아파트를 허물고 1,400세대가 살 아파트를 지어서, 400세대를 민간분양한 수익금으로 건축비 등 복잡한 재산관계를 해결하는 방식임.

172. 400세대를 민간 분양한 수익금으로 건축비 등 복잡한 재산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신축 아파트 가격이 높게 형성되어야 사업성이 나옴.

173. 새로운 400명의 신규 입주자가 쉽게 들어와야 시스템이 돌아가는 문제도 있음.

174. 출산율 0.6명의 인구 감소 시대에 접어들고 있음.

175. 서울 및 수도권, 일부 광역시의 핵심지역을 제외한 노후 저가 아파트는 재건축이 힘들어, 폐가가 될 가능성도 있어 보임.

176. 동일 시기에 건설한 비수도권 신도시 전체가 일시에 노후화되고, 대규모 인구를 끌어들이지 못해 소멸해 갈 수도 있는 것임.

177. 1기 신도시는 나눠서 봐야 할듯함.

178. 분당과 평촌 정도는 아파트 가격이 높아 재건축에 큰 무리가 없어 보이는데, 일산, 중동, 산본은 쉽지 않아 보이는 것임.

179. 결국 용적률을 최대한 높여서 사업성을 올려주는 방법밖에 없어 보임.

180. 용적률을 높인다는 것은 일반분양 비중을 높여서 조금이라도 분담금을 줄여주겠다는 것임.

181. 현재 1기 신도시 평균 용적률은 분당 184%, 일산 169%, 평촌 204%, 산본 205%, 중동 226%임.

182. 1기 신도시 재건축에 최고 500%의 용적률이 나오는 이유가, 최대한 사업성을 높여보겠다는 목적임.

https://www.ajunews.com/view/20231228140356041

국토부 1기 신도시 최고 용적률 500% 일부만 적용···닭장 아파트 사태 없다 | 아주경제

최고 용적률 500%까지 허용하는 1기 신도시 특별법 선도지구가 내년 하반기 지역별로 1개 이상 선정된다. 국토교통부는 500% 용적률이 모든 지역에서 적용되지 않아 이른바 닭장 아파트 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또 대규모 이주에 따른 전세시장 불안 가능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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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분당과 일산을 비교하면 일산 동구의 경우 평당 2,115만 원인데, 성남시 분당구는 평당 4,722만 원으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음.

184. 분당은 300%대 용적률만 허용해도 사업성이 생기는데, 일산만 하더라도 500%를 줘도 사업성이 아슬아슬한 것임.

185. 국토부는 내년 중에 1기 신도시 5개에 각각 하나씩 선도지구를 지정해서, 재건축 테스트를 해보겠다고 하는 중임.

186. 선도지구는 차후 순조로운 재건축 확대를 위해서 사업성이 좋은 지역 위주로 선정될 가능성이 높아 보임.

187. 재건축 이주민들로 인한 전세금 폭등을 막기 위해, 몇 차례로 나눠서 재건축을 진행할 것이기 때문에 선도지구로 선정되지 않은 곳들은 생각보다 오랜 기다림이 필요할 듯함.

188. 아무리 몇 차례로 나눈다고 하더라도, 1기 신도시 292,000세대의 재건축이 시작되면 입주민들이 이주하는 과정에서 여파가 상당할 듯함.

189. 용적률을 높인다는 것은 공급물량이 늘어난다는 말이 되므로, 중장기적인 주택 가격에 영향을 주는 등 여러 가지 변수가 예견되는 상황임.

한 줄 코멘트. 재건축 가치가 낮은 아파트는 세월이 갈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소모품과 비슷함. 오래된 아파트를 살 때는 주변 신축 아파트와 가격차이를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음. "혹여 벼슬에서 물러나더라도 한양 근처에서 살며 안목을 떨어뜨리지 않아야 한다.", "절대 서울에서 10리 이상 바깥으로 나가지 마라"라는 다산 정약용의 자녀교육을 보면, 생각이 많아짐.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정리해 봅니다. 네이버 메르의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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