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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의 생각

엔화 이야기 2(feat 천안문, 외환위기, IMF, 종금사, 국가부도)

메르

2024.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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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ranto28/223509922298

엔화 이야기 1 (feat 수에즈운하,중동전쟁, 플라자합의)

https://blog.naver.com/ranto28/223461322489?trackingCode=blog_bloghome_searchlist 5월에 쓴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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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 이어서 2편입니다.

79. 엔고가 너무 심해 수출로는 답이 안 나오자, 일본은 2가지 방향을 잡게 됨.

80. 해외투자를 확대하고, 내수를 살려서 성장을 지속하려고 함.

81. 일본의 해외투자는 태국등 동남아 기업들에게 집중되기 시작함.

82. 타이밍이 나쁜게 문제였음.

83. 중국이 문제였음.

84. 당시 덩샤오핑의 후계자는 장쩌민이 아니라 리펑이었음

85. 80년대 말 중국 민중들에게 자유의 바람이 불어 학생시위가 커지기 시작하였고, 천안문 광장까지 시위대가 점령을 함.

© felix_luo, 출처 Unsplash

86. 피를 보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고 판단한 중국 공산당은 천안문 사태를 주도하였고, 리펑이 인민 학살의 총대를 멤

87. 천안문 학살로 시위는 진압했지만, 리펑이 천안문에서 피를 묻혀서, 중국개방의 얼굴로 외부로 나가기에 문제가 있다고 봄.

88. 북경에서 먼 상하이를 맡고 있어 천안문 피가 묻지 않았고, 중앙에 파벌이 없는 장쩌민을 얼굴마담 후계자로 세우고, 리펑이 총리를 맡아 실권을 행사하는 구도를 다시 짬

89. 상하이 시장 장쩌민이 국가 주석에 오름.

90. 장쩌민은 성과가 필요했음

91. 덩샤오핑이 주석직을 장쩌민에게 물려줬지만 리펑이라는 실세가 있고, 덩샤오핑도 힘이 짱짱했기에, 장쩌민은 덩샤오핑의 경제정책을 실현하며 힘을 키우려고 함

92. 그래서 나온것이 선부론이었음

93. 선부론은 먼저 부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부자가 되면, 그들이 뒤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도와서 결국 전체가 다 잘 살 것이라는 덩샤오핑의 이론이었음

94. 자원을 선택적으로 집중하자는 말이었고, 상하이 등 남부 해안 도시들을 집중적으로 키우기 시작함.

95. 해안 도시를 키우는 방법은 수출 확대로 방향을 잡음

96. 그 당시 중국은 노동집약적 상품밖에 만들 수 없었고, 태국,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과 가격 경쟁을 하고 있었음.

97. 1994년 1월 중국은 환율을 크게 건드림

98. 달러당 5.8위안을 8.6위안으로 한방에 바꿔버린 것임.

99. 환율이 5.8위안에서 8.6위안이 되었다는 말은 중국 제품의 가격이 40% 싸졌다는 말임

100. 환율을 건드려 가격 경쟁력에서 압도를 한 중국은 수출이 증가하며 성장이 시작되었지만, 중국과 가격경쟁을 하던 동남아 국가들은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서며 달러가 마르기 시작함

101. 태국은 환율을 하나로 고정시키는 고정환율제를 하고 있었음.

102. 무역수지 적자로 달러는 부족한데, 얼마 없는 달러를 고정환율제 유지를 위한 환율 방어에 소모해버림.

103. 태국등 동남아에 달러가 마르고 있다는 약점을 알아차린 헤지펀드들은 팀을 꾸리기 시작함.

© jocelynwong, 출처 Unsplash

104. 이때 한국은 김영삼이 대통령이 됨

105. 1994년, 김영삼정부는 금융선진화라는 이름으로 사채업자들을 양성화시킨 24개 단자회사를 종금사로 전환함.

106. 6개 종금사 체제에서 24개 종금사가 추가되며 30개 종금사가 되자 종금사가 먹고 살 새로운 먹거리가 필요해짐

107. 사채업이 본업이었던 신설 종금사들에게 외화대출을 풀어줌.

108. 외화대출을 풀어주자, 신설 종금사들은 일본 등 해외자금을 싼 이자로 빌려와 대기업에게 비싸게 빌려주며 돈을 벌기 시작함.

109. 5%대로 해외자금을 빌려와서 10%대로 대출을 해주면, 큰 수익을 먹을 수 있어 떼돈을 벌기 시작함.

110. 신설 종금사가 시작한 엔화대출에 대부분 종금사가 뛰어들자, 종금사들 간에 대출 경쟁이 심해지며 종금사들의 마진이 박해짐

111. 종금사들은 한국 시장을 벗어나 태국, 러시아 등으로 진출해서 해외에서도 같은 방식의 영업을 하기 시작함

112. 일본이 플라자 합의로 수출이 힘들어지자, 태국 등 동남아 기업들에게 투자를 확대하며 먹을거리를 찾아보려고 하던 때였음.

113. 이런 타이밍에 헤지펀드들은 첫번째 타깃으로 태국을 공격하기 시작한것임.

114. 헤지펀드들은 태국 바트화를 공매도하며 고정환율제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1997년 7월 2일 태국정부는 GG를 침.

115. 태국정부가 고정환율제를 포기하자 바트화는 바로 맛이 갔고, 헤지펀드들은 막대한 환차익을 먹게 됨

116. 1997년 10월,태국에서 개시를 한 헤지펀드들은 아시아 금융허브인 홍콩으로 타깃을 바꿈.

117. 당시 홍콩은 아시아 금융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미국 달러와 7.7대 1을 유지하는 홍콩 환율을 무너뜨리면, 이익의 크기가 동남아와 비교가 되지 않았던 것임.

118. 영국 치하에서 금융에 대한 역량을 쌓아온 홍콩당국은 헤지펀드가 홍콩 달러를 공격하자 헤지펀드의 약점을 파고 듬.

119. 헤지펀드들은 자기자금의 몇배를 단기로 빌려서 투자를 하기때문에 장기전에 약점이 있었음.

120. 이들은 홍콩 금융권에서 6%대 금리의 단기 자금을 빌려서 홍콩 달러를 공격함.

© andrewjephson, 출처 Unsplash

121. 1997년 10월 23일, 홍콩 통화국은 홍콩은행간 금리(Hibor)를 6%에서 300%로 50배를 올려버림.

122. 홍콩 증시도 반토막이 났지만, 헤지펀드들도 연 300%의 단기대출 금리를 감당할 수 없자, 미국등의 주식을 팔아 단기자금을 갚고 홍콩에서 빠져나옴.

123. 두달만에 홍콩 증시가 반토막이 나자,정상적으로 홍콩에 투자했던 미국의 뮤츄얼펀드들도 도매급으로 큰 손실을 보게 됨.

124. 1997년 10월 27일은 월요일 이었음.

125. 뮤츄얼펀드들은 홍콩에서 물린 돈을 갚기 위해 미국 주식을 대량 투매함.

126. 당시 미국증시는 다우존시 지수가 150포인트 이상 하락하면 주식 거래를 30분간 정지하도록 되어 있었음.

127. 이날은 주식 거래가 2번이나 정지되며, 10년중 가장 큰 폭인 554포인트(7.2%)가 폭락함.

128. 홍콩에서 빠져나온 헤지펀드들은 큰 손해를 봤지만 공격을 포기하지 않았고,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등 동남아와 한국으로 방향을 돌림.

129. 당시 동남아 각국들은 중국의 환율 조작으로 가격 경쟁에서 밀려 수출이 힘들던 시기 였음.

130. 동남아 기업들은 수출이 안되니 달러가 부족한데, 헤지펀드의 공격으로 환율까지 망가지니 부실이 터지기 시작함.

131. 동남아 기업들의 부실이 터지기 시작하자, 동남아 기업에 투자를 많이했던 야마이치 증권, 탁쇼쿠은행 등 일본 금융기관들의 파산이 시작됨.

​​

132. 일본 금융기관들이 도산하기 시작하자 일본 금융감독국에서는 자본을 늘리게 규제가 들어감.

133. 폴 볼커가 제안한 은행 BIS 비율이라는 제도를 도입해서 은행의 자본 비율을 높이라고 지시한 것임.

134. 일본 은행들은 갑자기 자본을 늘릴 수 없으니 대출을 회수하며 비율을 맞추기 시작함.

135. 분자를 늘릴수 없으니, 분모를 줄인 것임.

136. 기존 나가있는 대출이 만기가 도래하는 대로 족족 회수하였는데, 만기가 짧게 한국 종금사에 빌려준 돈이 회수의 주 타깃이 됨

137. 종금사들은 일본이 만기연장을 안해주고 상환요구를 하자, 그 돈을 갚기위해 대기업들에게 빌려줬던 대출금을 회수하기 시작함.

138. 그 당시 한국 대기업의 평균 부채비율이 519%로 재무가 좋지않은 상황이라 종금사의 대출 회수에 무너지기 시작함

139. 단기로 빌려와서 장기로 빌려준 종금사들은 만기가 돌아오면 대출을 족족 상환받았지만, 한계가 있었음.

140. 종금사들의 유동성이 부족해지기 시작했고, 종금사가 부도날 것 같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함.

141. 돈을 못받을까 걱정이 든 종금사 예금주들은 종금사에 몰려와 예금을 인출해가기 시작함.

142. 단 3일간 전체 종금사 개인 예금 2.9조의 40%인 1.1조가 인출되었고, 30개 종금사중 29개 종금사가 시차를 두고 무너지게됨.

143. 한국에 들어온 해외자금이 종금사등으로부터 상환 받은 돈을 달러로 바꿔 빠져나가기 시작하자 한국도 달러가 마르기 시작함.

144. 한국 역시 태국과 마찬가지로 고정환율제를 운용하고 있었음.

145. 한국정부는 97년 10월~11월 외환시장에 118억 달러를 쏟아부었지만, 달러만 바닥이 났고, 헤지펀드의 공격에 버틸수 없었음 .

146. 한국은 IMF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됨.

147.11월 20일 오전까지도 250억 달러가 남아있다고 했던 외환보유고는 11월20일 밤 10시20분의 전격 발표때는 30억달러도 남아있지 않은것으로 밝혀짐. ​

148. 1997년 12월 19일 백악관에서 클린턴 대통령 주재로 국가 안보회의가 열렸는데, 한국 외채 문제가 회의의 주제였음.

149. 루빈 재무장관은 한국이 채무불이행 상태가 되더라도 어쩔수 없다고 발언함.

150. 코언 국방장관은 생각이 달랐음.

151. 코언은 "한국은 수만 명의 미군이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총을 겨누고 있는 나라다. 한국의 경제위기는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해서풀어가야 한다"고 주장했고, 코언의 주장이 수용되어 미 정부도 한국에 대한 자금지원을 승인함.

152. 변동환율제로 전환한 이후 한국의 환율은 800원에서 1,960원까지 올라갔지만, 크리스마스 다음날, IMF와 미국등 G7국가들이 자금을 조기 지원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보도되면서 1,498원으로 마감되며 상승 추세가 꺾이기 시작함.

153. 그린스펀의 자서전 '격동의 시대'를 보면, 이들의 지원은 한국을 위한 것은 아니었음.

"한국이 채무불이행 상태가 되면 국제시장이 위태로와지고, 일본이나 다른 국가의 주요 은행시스템으로 여파가 퍼지면 이들도 파산할 가능성이 높았다"는 생각에서 한국 지원을 결정한것임.

154. IMF는 한국에 550억 달러의 지원자금을 승인했지만, 한국은 이중 195억 달러만 가져다 썼고, 4년만에 다 갚은 뒤 IMF를 졸업하게 됨.

155. 빌린돈은 갚았지만, 훨씬 큰 대가를 치름.

156. 대우그룹이 공중분해 되며 대우자동차가 GM으로 넘어갔고, 삼성그룹의 굴삭기가 볼보에, 포크리프트 부문이 클라크에, 화학부분은 듀퐁, 석유화학 부분은 아모코에 넘어감.

157. 이외에도 두산음료는 코카콜라에, 오비맥주는 인터브류에 넘어가는등 쓸만한 한국기업들이 외국 자금에 줍줍 쇼핑을 당하게 됨.

158. JP모건은 좀 더 세련되게 이익을 가져감.

159. JP모건은 태국 바트화나 인도네시아 루피아화의 통화가치가 폭락하면 자기들이 돈을 버는 동남아채권연계 신용파생상품을 만듬.

160. 한국의 주택은행,보람은행,SK증권,한국투신,한남투신,제일투신,신세기투신등 국내 금융기관들이 이 신용파생상품을 구입했고, 1년도 되지않아 동남아 외환위기가 터져 한국 금융사들은 16억 달러의 손실을 입게 됨.

161.이 손실로 한남투신과 신세기투신은 문을 닫았고, SK증권은 완전자본잠식 상태가 되어 그룹의 지원을 받아 간신히 살아났으며, 보람은행은 라이벌 하나은행에 합병을 당하게 됨.

162. 당시 한스밴드라는 팀이 오락실이라는 노래를 유행시킴.

163. 한스밴드의 오락실은 98년 IMF외환위기가 한국 기업들을 무너뜨리자, 수많은 아버지들이 출근 복장으로 정처없이 떠도는 모습이 그려진 가사임

https://youtu.be/E8-dZq8o_So?si=Qt0oAMKrpGSpMxfi

시험을 망쳤어 오 집에가기 싫었어

열받아서 오락실에 들어갔어

어머 이게 누구야 저 대머리 아저씨

내가 제일 사랑하는 우리아빠

장난이 아닌 걸 또 최고기록을 깼어

처음이란 아빠 말을 믿을 수가 없어

용돈을 주셨어 단 조건이 붙었어

엄마에게 말하지 말랬어

가끔 아빠도 회사에 가기 싫겠지

엄마 잔소리, 바가지, 돈타령 숨이 막혀

가슴이 아파 무거운 아빠의 얼굴

혹시 내 시험성적 아신건 아닐까

오늘의 뉴스

대낮부터 오락실엔 이시대의 아빠들이 많다는데

혀끝을 쯧쯧 내차시는 엄마와

내 눈치를 살피는 우리아빠

늦은 밤중에 아빠의 한숨소리

옆엔 신나게 코골며 잠꼬대 하는 엄마

가슴이 아파 무거운 아빠의 얼굴

혹시 내일도 회사에 가기 싫으실까

아침은 오고 또 엄마의 잔소리

도시락은 아빠꺼 내꺼 두 개

아빠 조금 있다 또 거기서 만나요

오늘 누가 이기나 겨뤄봐요

승부의 세계는 오 너무너무 냉정해

부녀간도 소용없는 오락 한판

아빠 힘내요 난 아빠를 믿어요 아빠 곁엔 제가 있어요

아빠를 이해할 수 있어요 아빠를 너무 사랑해요

164. IMF외환위기는 기업이 망하고 끝난게 아니라 이땅의 아버지들을 산이나 공원, 오락실등으로 내 몬 사건이었음.

165. 동남아와 한국을 성공적으로 공략한 헤지펀드들은 홍콩에 2차 공격을 재개함.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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