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965년 워런 버핏 주주서한 번역
에이버리
2023.08.09
※ 감수인 드디어 올려 주셨네요. 감사 드립니다. 버크셔 해서웨이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지 않은 과거 주주서한도 에이버리님 덕분에 감상하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사 드립니다. 이 책입니다.
1960년대 미국의 경제는 1950년대의 호황을 이어받아 지속적으로 성장했습니다. 1964년에는 케네디 대통령의 신경제정책이 시행되면서 경제성장은 더욱 가속화되었습니다. 신경제정책은 세금 감면, 재정지출 확대, 정부 규제 완화 등을 골자로 하였으며, 이로 인해 기업의 투자와 소비가 증가하고, 경제성장률은 5%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1965년 베트남전쟁이 발발하면서 경제성장은 둔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베트남전쟁은 막대한 재정 부담을 초래하였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였습니다. 또한, 베트남전쟁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아지면서 사회 분위기가 혼란스러워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 미국의 경제는 전반적으로 호황을 누렸습니다. 실업률은 낮고, 가계소득은 증가했으며, 중산층이 확대되었습니다.
1970년대 미국의 경제는 1960년대의 호황에 비해 크게 둔화되었습니다. 이는 베트남전쟁, 석유파동, 오일쇼크 등의 요인으로 인해 발생했습니다. 베트남전쟁은 미국에 막대한 재정 부담을 초래했습니다. 전쟁비용이 연간 100억 달러에 달했으며, 이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였습니다. 또한, 베트남전쟁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아지면서 사회 분위기가 혼란스러워졌습니다. 1973년에는 중동의 산유국들이 석유 수출을 중단하는 석유파동이 발생했습니다. 이로 인해 유가가 급등하였고, 미국의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1차 오일파동) 1979년에는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이로 인해 이란의 석유 생산이 중단되면서 유가가 다시 급등했습니다. 이로 인해 미국의 경제는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2차 오일파동) 1970년대 미국의 경제는 stagflation(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의 동시 발생)에 빠졌습니다. 실업률은 증가하였고, 인플레이션은 10%에 달했습니다. 또한, 경제성장률은 2%에 그쳤습니다. 1970년대 미국의 경제는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의 경제적 어려움은 미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주) 위의 내용은 Bard를 참조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워런 버핏은 호황과 불황의 순간에도 미국의 경제는 굳건하리라고 믿었습니다. 심지어 2차 세계대전 중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국이 고전하고 있을 때 주가가 쌌다' 라고 주주총회에서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정확한 워딩은 아님). 한 두 문장이라도 위기의 순간에 구루의 생각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듯 합니다.
* 보고서 검토 우선순위 : '보유 -> 독점 -> 요청시기 ' 순입니다 (절대적이지 않음). |
원래는 버크셔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1977년 서한부터 번역을 해볼까 했지만 감사하게도 오렌지보드 측에서 1965-2014년 서한 원문을 엮은 종이책을 보내주셔서 1965년 서한부터 번역을하게 되었습니다.
감수인) 워런 버핏은 1965년부터 버크셔 해서웨이를 지배함.
다만 버핏은 1977년 서한부터 자사 주주들에게 교훈적인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내용을 포함시켰기에 이전 서한의 경우 분량도 적고 여러분이 원하는 내용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1965년 서한이 많이 짧습니다.)
그럼에도 버핏이 인수한 직후부터 버크셔가 어떠한 모습으로 발전했는지 큰 그림을 온전히 이해하고 싶으신 분이라면 한 번 정도 읽어보는 것이 의미가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최소 토익이 990점까지 밖에 없어 인생을 손해보고 있다 생각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면 서한 원문 전체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시중에 판매되는 책에는 핵심 내용의 번역이 잘못된 경우도 너무 많고요. 제 번역 역시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아마 핵심 내용을 오도하는 경우는 웬만하면 없을 거라 생각하며 그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꾸준히 작성해 모든 서한을 다 번역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 귀하:
1965년 10월 2일에 회계 연도가 마무리되었으며 이 기간 $2,279,206의 순이익을 기록했습니다. 전년도의 순이익은 $125,586입니다. 이 순이익은 매사추세츠 폴 리버의 킹 필립 공장 A와 E의 영구적인 폐쇄로 인한 자산 처분에서 비롯된 비경상 손실을 포함하지 않는 수치입니다. 왜냐하면 일전에 이미 해당 목적의 충당금을 적립했기 때문입니다.
이월손실금 덕분에 작년과 올해에 당사가 지급해야 할 연방 법인세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월손실금의 혜택을 보지 못할 미래 시기의 이익을 오도하지 않고자 당사는 1964년과 1965년의 순이익을 계산하는 데 있어 각 해의 영업 성과에 상응하는 연방 소득세를 포함했습니다.
당사는 로드아일랜드 워런에 위치한 킹 필립 공장 D와 매사추세츠 뉴베드퍼드의 해서웨이 합성 섬유, 박스 룸, 홈 페브릭스 디비전에서 영업을 계속할 것입니다.
1965년 원재료, 반제품, 섬유 재고는 $1,411,967만큼 줄었고 $2,500,000의 은행 대출은 상환되었습니다. 또한, 해당 연도에 당사는 120,231주의 자사주를 매입하여 회계 연도 말에 유통 주식 수를 1,017,547주로 줄였습니다.
당사는 직전 회계 연도 기간에 간접비를 상당한 수준으로 감소시켰으며 대략 $811,812가 비용을 절감하고 제품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투자했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현 회계 연도에도 계속될 것입니다.
킹 필립 공장 E 디비전의 기계 장치의 상당 부분을 판매했으며 현 회계 연도 내에 공장의 남은 것들을 처분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나면 수익성 낮은 공장의 청산이 완료될 것입니다. 제안된 킹 필립 E 디비전의 판매가 이루어지면 해서웨이 디비전 공장 C(전 랭쇼 공장)의 킹 필립 D 디비전에 목화 원료와 회색 섬유 저장 공간을 새로 공급해야 합니다. 이번 회계 연도 내에 이를 이행하기 위한 계획이 이미 실행 중에 있습니다.
시베리씨는 50년이 넘는 임기를 마치고 이사직과 사장 자리에서 사임하게 되었으며 케니스 V. 체이스씨가 후임으로 선출되었습니다. 동시에 존 K. 스탠튼씨 역시 이사직과 재무 및 서기 담당 임원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해럴드 V. 뱅스씨가 재무 및 서기 담당 임원직의 후임으로 선출되었습니다.
당사의 모든 부서는 상당한 주문을 받아 놓았으며 아직 발송 처리가 되지 않은 주문도 상당하며 이에 따라 올해 영업으로부터 계속해서 수익을 얻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헌신과 노력으로 성공적인 한 해를 만드는데 기여한 당사 임직원 모두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해설:
원래 버크셔 해서웨이는 그 역사가 아주 오래된 섬유 사업만을 영위하던 업체였습니다. 전형적인 그레이엄식 투자의 일환으로 버크셔를 인수한 그는 훗날 이 인수가 자신의 커리어의 중대한 실수였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 저물어가던 섬유 사업을 살릴 수 있다 오판한 것을 고백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시리즈를 계속 봐주시면 그 이유에 대한 버핏의 설명을 들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버핏의 주주서한의 대부분의 분량을 차지하는 버크셔 자회사의 경영 성과에 대한 내용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주식 시장 등에 관한 그의 팁만을 알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저는 자회사 영업 등에 관한 그의 설명 역시 매우 중요하며 이 역시 이해해야 그의 관점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여러분께서도 제가 그랬던 것처럼 많은 것을 배우실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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