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의 팜
엔화는 언제 강해질까? (feat 일본은행이 달라졌어요)
메르
2024.05.29
엔화의 가치가 계속 비실비실하고 있다.
일본은행이 예전과 다른듯해서 상황을 정리해 본다.
1. 캐리 트레이드는 돈을 빌려서 주식과 같은 유가증권의 투자를 늘리는 행위를 말함.
2. 캐리 트레이드의 이론적 근거는 피셔의 자금이동설임.
3. 피셔의 자금이동설은 자금 유입 규모를 m=rd-(re+e)로 설명하고 있음.
※ 자금 유입 규모 = 투자국 수익률 - (차입금 금리 + 환율 변동)
4. 투자를 하려는 나라의 수익률이 환율을 감안한 차입국 금리보다 높을 경우, 투자대상국으로 자금이 이동한다는 이론임.
5. 일본에는 와타나베 부인이 있음.
6. 일본은 전통적으로 가정주부들이 가계의 저축과 투자를 전담함.
7. 이들은 마이너스 금리인 일본에 예금하지 않고, 국경을 넘나드는 엔 캐리 트레이드(yen carry trade)로 재테크를 하는 성향이 높음.
8. 와타나베 부인이라고 통칭하지만, 저금리가 시작된 1990년 이후 유행하고 있는 일본 가정의 투자 패턴이라고 보면 될듯함.
9. 와타나베 부인이 일본에서 연 이자율 1%로 1,000만 엔을 대출해 미국에 연 이자율 5%인 1년 만기 저축예금에 가입하고, 투자 당시 양국 간 환율이 달러/일본엔 130이라고 가정을 해봄.
10. 1,000만 엔을 환전한 7만 6천 불로 미국에서 1년 정기예금을 하든지 단기국채를 사면 대략 8만 불이 나옴.
11. 환율이 투자시점과 같다면, 8만 불을 엔으로 환전해 1,050만엔을 받지만, 달러/일본엔이 130에서 150으로 바뀌면 숫자가 변함.
12. 달러/일본엔이 150이 되면, 8만 불로 1200만 엔을 받을 수 있음.
13. 와타나베부인은 1200만 엔을 받아서 1010만 엔(10만 엔은 이자)을 갚고 나도, 190만 엔이 남게 되는 것임.
14. 환전비용 등 소소한 차이가 있지만, 대략의 흐름은 이렇게 돌아감.
15. 이들은 이자율이 낮은 일본에서 빌린 엔화를 수익률이 높은 국가에 예금(투자) 해서 높은 수익을 노렸고, 환율 이익까지 보게 됨.
16. 이렇게 금리에 따라서 자금을 움직이며 이익을 먹으려고 하는 집단은 이들만 있는 것은 아님.
17.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 저금리로 돌아서자, 미국의 스미스 부인(Mrs Smith)이 나왔고, 유럽이 초저금리가 되면서 소피아 부인(Mrs. Sophia)이 나오는 식으로 자국의 금리가 상대적으로 낮아지면 해외투자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일반적인 동향임.
18. 오랫동안 모아놓은 예금 규모가 크고, 일본이 워낙 오랜 기간 저금리라 와타나베부인이 상대적으로 유명한 정도임.
19. 작년 봄, 신임 일본은행 총재 취임 초기, 간을 보는 모습을 보이던 와타나베 부인은 해외로 자금을 움직이기 시작함.
20. 우에다가 강력한 정책을 펼치는 강경파가아니라는 판단을 했고, 일본의 금리 인상이 당장은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한 것임.
21. 흔싸귀비, 뭐든 흔하면 싸지고, 귀하면 비싸짐.
22. 이들이 엔화를 달러로 바꿔서 해외 투자에 나서니, 엔화는 흔해지고 달러는 귀해지니 엔달러 환율이 150을 넘게 됨.
23. 엔화가 너무 싸지면, 일본은행이 개입해서 엔화를 적정 수준으로 올리려고 움직임.
24. 중장기적으로 엔화를 강하게 만드는 방법은 금리를 올리는 것이고, 단기적인 방법은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것임.
25. 일본은행이 시장에 직접 개입한 적이 있었음.
26. 2003년, 미국은 이라크와 전쟁을 시작함.
27. 미국은 막대한 전쟁비용이 필요했고, 그 돈을 마련하려면 달러를 찍어내야 하는 상황이 됨.
28. 달러를 찍어내면 달러가 흔해져서 싸지니 흔싸귀비에 따라 달러 가치가 낮아지는 로직이 돌아감.
29. 헤지펀드들은 달러 가치가 낮아지기 전에 달러를 팔아버림.
30. 달러가 약해지면 돈이 몰려갈 곳은 일본 엔이라고 생각한 헤지펀드들은 달러를 판 돈으로 엔화 강세에 베팅을 하기 시작함.
31. 2003년 5월 8일이었음.
32. 달러당 117엔 수준이었던 엔화는 헤지펀드의 공격이 들어오자 105엔까지 변동함.
33. 일본은행은 재무상의 지휘하에 반격에 나섬.
34. 많은 날은 시간당 600억 엔, 하루 1조 4400억 엔까지 투입해서 엔을 방어하기 시작한 것임.
35. 총 26조 엔의 엔화 포탄이 쏟아져 내림.
36. 일본은행은 보유하고 있는 30조엔 외에도 200조엔 규모의 미국 국채 중 만기가 짧은 100조 엔을 팔아 자금을 확보함.
37. 26조엔뿐만 아니라 100조엔 이상을 쏟아버릴 수 있다는 결기를 보여준 것임.
38. 헤지펀드들이 수조 달러를 가진 괴물로 보였지만, 속을 뜯어보면 수백 개가 넘는 펀드들이 각자의 이익으로 움직이는 형태임.
39. 헤지펀드들 간 구두 약속과 이심전심은 한번 삐긋하면 무너질 수 있는 위험을 가지고 있었음.
40. 일본은행의 엔화 투척에 엔화가 반대로 움직이기 시작함.
41. 엔화 강세에 실패한 헤지펀드들은 줄줄이 도산했고, 일본은 매도한 미국 국채를 다시 사서 국고에 반환하고 상황이 종료가 됨.
42. 수천 개의 헤지펀드가 도산했고, 이것을 일은포(일본은행 대포) 사건으로 부르게 됨.
43. 일본은행이 130조 엔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확보하고 시장에 개입한 사건이 실제 발생하자 헤지펀드들은 일은의 개입 징후가 보이면 긴장하게 됨.
44. 2024년 4월 29일, 엔이 달러당 160을 넘는 순간 일본은행이 다시 환율에 개입함.
45. 일본은행이 불편해하는 지점이 160이라는 것이 확인되었지만, 문제는 개입 규모였음.
46. 2024년 4월에 개입한 5조 5천억 엔은 과거에 비하면 과감한 규모가 아니었음.
47. 당시 블로그 글에서 개입 규모를 보니, 엔화가 강해지려면 7월은 되어야 할듯하다고 이야기 한 기억이 남.
48. 일본의 개입 규모가 생각보다 작았던 것은 미국 재무 장관 옐런과 연관이 있다고 봄.
49. 일본이 엔화에 개입하기 4일 전인 4월 25일, 옐런의 다음 발언이 블롬버그에 방송됨.
"엔화 환율에 대한 일본 정부의 시장개입은 극히 조심해서 해야 한다. 일본 정부는 아주 심한 변동성이 나타날 때만 개입하고, 그럴 때 일본은 사전에 우리와 협의할 것이다"
50. 일본은행이 가지고 있는 외화 잔고는 1조 3천억 달러(약 200조엔)으로 대부분 미국 국채로 구성되어 있음.
51. 일본은행이 외환시장에 제대로 개입하려면 미국 국채를 팔아서 자금을 마련해야 함.
52. 미국 국채를 판다는 것은 미국 국채가 흔해져서 가격이 낮아지고 금리가 올라간다는 것임.
53. 바이백을 하면서까지 국채금리를 낮춰보려는 옐런 입장에서 일본은행의 시장개입은 반대 방향이 되는 것임.
54. 옐런의 반응에 헤지펀드들이 일본은행의 한계를 확인함.
55. 헤지펀드들은 일본은행의 시장개입에도 도망가지 않았음.
56. 헤지펀드들의 예상대로 일본은행은 5조 5천억엔 정도를 외환시장에 던지는 가벼운 개입을 하게 됨.
57. 옐런의 경고에 일본은행은 일은포가 아니라 새총 수준의 개입만을 하게 된 것임.
58. 일본은행이 엔화를 강하게 만드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가 있음.
59.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단기적이고 직접적인 방법과, 금리를 올리는 중장기적이고 간접적인 방법임.
60. 미국과 협력해야 하는 일본의 상황에서 미국 대선 전에 직접적인 외환시장 개입은 쉽지 않을듯함.
61.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는 타이밍이 생각보다 빨라질 수 있을듯한 이유임.
62. 이미 시장은 이것을 예상하고 조금씩 반응하고 있음.
63. 일본 국채 10년 물이 1%를 훌쩍 넘어가고 있는 것임.
한 줄 코멘트. 워낙 복잡한 원인들이 작용하기 때문에 환율을 예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7월쯤 엔화 강세가 될 것 같다는 기존 예상은 유지하겠음. 투표 전 주가가 여당 대통령 후보의 득표율에 영향을 미치는 미국 대선을 감안하면, 대선전까지 증시를 부양해야 하는 옐런이 여기저기 바쁘게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이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