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의 팜
선배의 퇴직을 보면서…
메르
2024.07.21
비가 계속 오는 주말이네요.
앞부분의 내용은 과거 언급한 적 있지만, 후기가 생겨서 주절주절해봅니다.
10년이상 연락이 없던 선배에게 전화가 와서, 점심을 같이 먹기로 했다.
전직장에서 대리일때 차장이었던 선배고, 친하게 지낸 관계는 아니었다.
그러니, 회사를 옮긴후 연락이 끊긴것이다.
회사 근처 식당에서 선배를 만나 과거 일하던 이야기를 한 참 했었다.
© janisrozenfelds, 출처 Unsplash
선배의 용건은 마지막에 나왔다.
본인이 주관해서 진행하는 주상복합건물이 승인 올라오면 긍정적인 검토를 요청하는 것이었다.
잘 검토해 보겠다고 답변하고, 내가 점심값을 내고 헤어졌다.
원래 여의도 바닥은 먼저 밥 먹자고 한 사람이 밥값을 내는 게 국룰이다.
하지만, 선배가 멀리서 왔으니 내가 내겠다고 우겨서 밥값을 내고 나왔다.
선배도 성과급 포함하면 최소 연봉 20억은 받는 사람이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사무실로 돌아와서 알아보니, 해당건이 접수 된 것이 맞았다.
하지만, 직원들에게 아는척 하지않고 지켜보기만 했다.
결국, 실무선에서 Drop되고, 그 건은 내게까지 오지도 않았다.
내게 왔으면 무조건 거절했을 것이다.
그런 부담없이 미리 잘라주니, 실무진들이 일을 잘하는구나 싶었다.
Drop 된 것 확인하고, 그 선배한테 전화를 했다.
열심히 검토를 했지만, 반대하는 쪽이 워낙 강경해서 아쉽지만 힘든 것으로 결론이 났다고 좋게 좋게 마무리 했다.
사실 부정적인 결론을 정해놓고 립 서비스만 한 셈이다.
거절하거나, 안되는 일일수록 상대방의 마음 최대한 덜 상하게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 세상사는 팁이기도 하다.
그 선배는 결국 다른 투자자들을 모아서 그 건을 성공시켰다.
사업비가 3조원에 가까운 큰 건이라, 분양 완판이 애매했는데, 미분양이 일부 있었지만, 손실이 나지않는 수준에서 분양이 되었다.
저정도 사업을 주관하면 사업비의 2%정도 수수료가 주관하는쪽에 보통 떨어진다.
회사와 반띵을 해도, 열명 안쪽인 팀에 2~300억원은 돌아갔을것이고, 선배가 팀의 리더 였으니, 팀원에게 나눠주고도 꽤 많은 성과급을 가져갔을 것이다.
해당건은 몇 년 후 문제가 생겼다.
신문에 기사가 나고,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더니, 그 선배는 조사받는다고 고생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몇명이 구속되고, 정치권까지 시끄러웠지만 선배는 어두운곳에 크게 발을 담그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무혐의로 판정되어 현업복귀를 했고, 다시 승승장구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고는 한번씩 월급쟁이 연봉 상위자 기사가 나면 선배 이름을 볼 수 있었다.
그 선배가 이번에 은퇴를 했다는 기사를 봤다.
아직 50대후반이니, 다른곳에서 한타임쯤 직장생활을 더 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까지만 하더라도 직장인으로 천수를 누린것 같다.
어쩌면 선배에 대해 내가 잘 못 생각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선배가 너무 위험한 플레이를 하는것으로 봤다.
하지만, 선배를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담장위를 끝까지 걸어간 후, 다친곳 없이 은퇴하는 노병으로 볼 수 있을듯하다.
나는 골프도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생각에서 배우지 않았다.
직속 상사가 개인돈으로 레슨비를 주면서 골프 연습을 하라고 해도, 하지않고 버텼다.
이것이 나를 살린적이 있다.
오너가 극혐하는 사람이 대표인 회사에 투자를 승인했다.
해외 출장을 갔던 오너가 이 사실을 알고는 부랴부랴 귀국해서 부들부들 하며 나를 불렀다.
오너는 그 사람과 골프를 쳤냐고 비꼬듯이 물었다.
접대를 받고 승인해준게 아닌가 하는 비꼼이었다.
나는 골프 자체를 안친다고 답변 했다.
그리고, 내가 오너가 극혐하는지, 좋아하는 지를 판단해서 투자결정 하는것을 바라느냐고 물었다.
오너는 성격은 좀 그렇지만 쿨한 사람이다.
바로 인정을 했다.
내가 기분나쁜것은 기분나쁜 것이고, 너는 지금처럼 냉정하게 숫자만 보고 판단하라고 하며 끝이 났다.
내가 깨끗해서 선배보다 낫다는 의미가 아니다.
깨끗하게 주변을 관리하는게, 정면이 아니라 뒤통수에서도 총알이 날라오는 전쟁터에서 생존확률을 높이는 방법일뿐이다.
여의도 바닥에서 선과 악은 없는듯하다.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하고, 숫자가 인격인 동네가 여의도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숫자를 잘 내고 무사히 은퇴를 한 선배도 승리자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 오전, 생각의 흐름대로 적다보니, 쓰고나서도 무슨말을 하는건지 애매한 글이 되었다.
하여튼, 오랜만에 오는 연락은 조심해야 한다.
부고는 제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