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의 팜
아무도 관심 없는 방글라데시 이야기(feat 정권 퇴진,인도,파키스탄)
메르
2024.08.14
제 글이 늘 그렇듯이, 목적지로 직진하지 않고, 돌아돌아 갑니다.
1. 인도 대륙에는 원래 힌두 교도들이 살고 있었음.
2. 8세기경에 이슬람교도들이 들어와 인도 대륙에는 두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섞여 살게 됨.
3. 이번에는 초반부터 영국이 등장함.
4. 영국이 인도 대륙을 식민지로 만든 것임.
5. 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벗어나기 위해 두 종교는 힘을 합쳤고, 1947년 마침내 영국이 GG를 침.
6. 이때 문제가 생김.
7. 공동의 적인 영국이 사라지자 그러면 인도 대륙은 어느 종교가 먹을 것인가?로 관심이 옮겨감.
8. 힌두교와 이슬람교 양대 종교 세력은 힌두교를 믿는 국가와 이슬람을 믿은 국가로 나라를 반띵하기로 합의를 함.
9. 힌두교를 믿는 국가가 인도가 되었고, 이슬람을 믿는 국가가 파키스탄이 됨.
10. 인도를 가운데 두고 동파키스탄과 서파키스탄으로 나눠진 것임.
11. 인도와 파키스탄이 쪼개지는 과정에서 문제가 터짐.
12. 두 종교집단 간에 사소한 분쟁이 확대되더니 상호 학살이 시작됨.
13. 힌두교도가 많은 델리에서는 힌두 교도들이 무슬림을 죽였고, 무슬림이 많은 서펀자브에서는 무슬림들이 힌두 교도들을 학살함.
14. 200만 명이 이 과정에서 상호 학살되었고, 1,400만 명은 종교에 따라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교차 이동을 하게 됨.
15. 파키스탄이 전체 인구의 97%가 무슬림인 무슬림 국가가 되었고, 인도가 힌두교 국가가 된 배경임.
16. 국가가 쪼개지는 과정에 수백만 명의 대량학살이 생기다 보니, 인도와 파키스탄은 철천지원수가 되었고, 지금도 그럼.
17. 파키스탄은 인도를 가운데 두고, 동서로 나눠서 독립했는데, 서 파키스탄은 중동에 붙어있고, 동 파키스탄은 아시아에 붙어 있음
18. 서 파키스탄과 동 파키스탄의 공통점은 둘 다 이슬람을 믿는다는 것밖에 없었음.
19. 서파키스탄은 백인 아리아계였고, 동 파키스탄은 동남아 인종이었음.
20. 서로 생김새, 인종, 언어 등 모든 것이 달랐음
(서파키스탄)
(동파키스탄)
21. 서파키스탄은 전투민족이고, 동파키스탄은 농경민족 성격이 강해서 서파키스탄이 전체를 지배하게 됨.
22. 정치, 군사 등 권력은 서 파키스탄이 다 먹고, 동 파키스탄은 빵 셔틀 역할을 하게 된 것임.
23. 동 파키스탄은 바다로부터 평균 높이가 3미터인 평지 지역이 국토의 대부분을 차지함
24. 평지에다가, 가운데 큰 강이 흘러 물이 풍부하고, 평균 기온이 30도에 이르며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 따뜻한 기후임.
25. 단위 면적당 엄청난 곡물을 쏟아낼 수 있는 벼를 3모작으로 재배할 수 있는 최적 환경이 됨.
26. 좋은 환경 덕분에 동 파키스탄은 면적은 서 파키스탄의 1/3도 안되지만, 파키스탄 전체 농작물의 60% 이상을 생산하게 됨.
27. 대부분의 농작물 생산이 동 파키스탄에서 일어나고 인구도 더 많은데, 국가예산의 75%가 서파키스탄에 사용되었고, 권력과 군사력도 서파키스탄이 장악을 함.
28. 1970년 11월 12일, 동 파키스탄에 초대형 태풍인 볼라가 덮침
29. 해발이 3미터밖에 안되는 평지에 큰 태풍이 덮치니 동파키스탄에서만 50만 명이 사망을 하게 됨
30. 세계 각국에서 지원품이 도착을 했는데, 폭풍 피해를 받지 않은 서 파키스탄이 대부분 지원품을 먹어버림.
31. 동파키스탄 사람들은 격분을 했고 분리독립 움직임이 시작됨
32. 인구는 동파키스탄이 6,500만 명, 서파키스탄이 5,800만 명이라 동파키스탄이 더 많았음.
33. 한 명당 한 표를 행사하는 선거는 동파키스탄이 유리했다는 말임
34. 1970년 총선에서 동파키스탄 자치를 주장한 아와미 연맹이 313석 중 160석을 가져가서 과반수를 넘겨버림
35. 서파키스탄 출신 칸 대통령이 총선을 무효 처리해버림
36. 1971년 3월 7일 아와미 연맹은 동파키스탄을 분리독립한다는 선언을 했고, 서파키스탄 군대가 진압에 나섬
37. 서파키스탄 군대는 인도와 나라를 나누는 과정에서 잔인한 인종청소를 했던 경험이 있던 군대였음.
38. 힌두교를 인종청소했던 경험이 이번에는 같은 종교를 가진 타민족에게 향하게 됨
39. 서파키스탄 군대는 대학교로 들어가 학생들을 사살했으며, 농촌으로 가서 마을단위로 청소하듯이 학살을 해버림
40. 동파키스탄 주민 100만 명 이상이 이때 학살당한 것으로 보고 있음.
41. 그냥 총으로 죽인 것만 아니라 손톱을 뽑고, 사지를 잘라가며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대한의 고통을 주며 학살을 함
42. 강간 후 살해당한 여자만 40만 명이 넘었다고 함.
43. 서파키스탄 군대는 이 작전명을 ‘서치라이트’라고 부름
44. 서치라이트를 피해서 1천만 명 이상의 동파키스탄 주민들이 인도 국경을 넘어 감.
45. 같은 종교를 찾아 인도에서 동파키스탄으로 넘어온 주민들이 같은 종교를 가진 타민족 때문에 다시 힌두교인 인도로 돌아간 것임
46. 인도 입장에서 실컷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로 나라를 세팅해 놨는데 이슬람교를 믿는 난민들이 인도로 밀려드는 것이 싫었음
47. 내전이라 손을 못 대고 보고만 있었는데, 인도에게 명분이 생김.
48. 피난민들을 추격해온 서파키스탄 군대가 인도 국경 안에 들어와 학살을 하는 것을 확인한 것임.
49. 1971년 12월 3일 인도는 파키스탄에 전쟁을 선포함.
50. 3차 인도 파키스탄 전쟁이라고 부름
51. 전쟁시작 2주 동안 인도군 1,426명이 죽은 반면, 파키스탄 군경 79,000명이 죽으며 파키스탄이 개박살이 남
52. 1971.12.16일 서파키스탄이 항복을 하고 동파키스탄이 독립을 함
53. 독립한 동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가 되고, 서파키스탄은 파키스탄이 됨.
54. 서파키스탄은 전투민족 성향의 무슬림들로 국민들이 구성되다 보니 이슬람 극단주의 국가가 돼 버림.
55. 동생이 지은 죄를 대신 갚는다는 명목으로 14명에게 강간을 당한 소녀가 법원에 고소했지만 강간범들이 무죄판결이 나옴.
56. 성폭행을 당한 여자는 자살하는 게 원칙인데 자살을 안 한 게 도리어 비난을 받음.
57. 10대 여자가 법원 선고에 의해서 돌에 맞아 죽는 투석형을 당함.
58. 죄목은 휴대폰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고, 법원은 가족이 돌로 직접 때려죽이라고 선고를 함.
59. 옛날에 벌어진 일이 아니라 2013년에 일어난 일임.
60. 이런 환경에서 커오다 보니, 파키스탄 노동자들이 국내 외국인 노동자 중에서 가장 높은 강력범죄율을 보이고 있음.
61. 동파키스탄에서 독립을 하며 이름이 바뀐 방글라데시는 국경선의 95% 이상이 인도에 둘러싸인 나라임.
62. 독립은 했지만, 방글라데시에는 농업이외에 특별한 산업이 없었음.
63. 1980년대만 하더라도, 방글라데시는 온갖 후진국 문제의 종합선물세트(basket case)였음.
64. 잘하는 것이라고는 인구증가뿐이고, 방글라데시가 경제발전을 할 수 있다면 다른 어떤 후진국도 발전할 수 있다"라고 말할 정도로 발전 희망이 없는 나라로 보였음.
65.197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한국은 경공업에서 중공업으로 주력이 바뀌기 시작함.
66. 인건비가 오르면서, 구로공단의 공장들은 인건비가 더 싼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함.
67. 70년대 봉제업과 의류업 대국이었던 한국이 80년대가 되며 임금이 올라가자 중국으로 공장이 넘어가게 됨.
68. 2010년이 되자 중국의 임금도 올라감.
69. 의류를 만드는 봉제업 등 수작업 비중이 높은 경공업들이 중국 임금의 1/4수준인 방글라데시 등으로 다시 이동한 것임.
70. 방글라데시는 70년대 한국의 구로공단 등에서 많이 했었던 의류 등 직물 가공업 수출을 시작하며 성장하기 시작함.
71. 녹색이 의류산업으로 월 112달러(15만 원)의 낮은 임금이 경쟁력이 되어서 의류산업은 방글라데시 수출의 80%를 차지하게 됨.
72. 과거 한국처럼 방글라데시도 의류업 근로자의 90% 이상이 여성으로 저임금에 수작업 위주 노동을 하고 있음.
73. 봉제업이 저임금이라 돈은 안되고 고생만 하는 줄 알지만, 방글라데시 여성들의 지위를 대폭 올려줌.
74. 1983년 180개에 불과했던 봉제공장이 2021년 5천 개 이상으로 증가했는데, 이곳에서 1800만 명의 여성이 일을 하게 됨.
75. 남자들은 농업 아니면, 폐선 해체 등의 일을 하는데, 봉제공장에 일하는 여자들의 임금이 남자들의 2배 이상으로 높아진 것임.
76.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많은 돈을 벌기 시작하자, 이슬람종교권에서 사회적 지위가 바닥이었던 여자들의 지위가 꽤 올라가게 됨.
77. 방글라데시 농촌 가정에서 의무교육인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보낼 때, 봉제공장에 취업해 돈을 더 잘 벌수 있는 여자아이에게 교육 기회를 먼저 주기도 하는 상황이 된 것임.
78. 남자들은 농사 아니면 배를 해체하는 일을 많이 하고 있음.
79. 방글라데시 제1항구인 치타공 앞바다에는 많은 배들이 항상 떠 있음.
80. 운항을 하는 배들이 아니라, 노후화되어 해체를 기다리는 배들임.
81. 10살 이하의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집안이 총출동해서, 위험하지만 하루 2달러를 벌 수 있는 선박해체업에 뛰어들고 있음.
82. 봉제업과 선박해체업 정도밖에 없어 우습게 보이지만, 방글라데시의 경제성장은 꽤 빠른 속도로 올라오고 있음.
83. 방글라데시는 2010년에 파키스탄의 1인당 GDP를 추월했고, 2020년에는 인도의 1인당 GDP를 뛰어넘음.
84. 그래봤자, 2022년 1인당 국민소득은 2,243달러(300만 원) 정도이기는 함.
85. 방글라데시는 인구증가 속도가 빨라서, 인구는 1.7억 명까지 올라왔고, 24세 이하가 절반 이상인 젊은 국가임.
86. 인구의 절반 이상이 24세 이하인 방글라데시에서 가장 큰 문제는 좋은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것임.
87. 방글라데시의 가장 좋은 일자리 중 하나가 공무원임.
88. 방글라데시의 공무원 월급이 높은 것은 아님.
89. 한국으로 치면 9급 공무원이 받는 급여는 한화 기준 월 8~20만 원 정도이고, 고위 공무원이 되어도 100만 원 정도를 받게 됨.
90. 공무원 중 가장 월급이 높은 방글라데시 총리도 월급이 130만 원(130,000 방글라데시 타카) 정도임.
91. 방글라데시 공무원들의 주 수입원은 월급이 아닌 경우가 많음.
92. 방글라데시는 아직 사회 전반적으로 뇌물이 퍼져있어서, 급행 비용 등 부수입을 월급 이상으로 받아 가는 경우가 많은 상황임.
93. 안정적인 직장 환경에 부수입까지 짭짤하니 청년들의 로망이 공무원이 된 것임.
94. 방글라데시는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며 청년들이 많은데, 청년 실업률은 40%에 달할 정도로 일자리가 부족한 나라임.
95. 매년 40만 명 이상의 대학생이 졸업을 하는데, 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공무원 TO는 3천 개 정도가 나오는 정도임.
96. 안 그래도 부족한 3천 개의 공무원 자리 중 1천 개를 독립유공자들에게 별도 TO로 배정하겠다는 정부 발표가 청년들을 폭발시킴.
97. 현재도 여성 할당 10%, 장애인 할당 6% 등 여러 가지 할당이 있어서 시험으로 배정되는 공무원 TO가 부족하다고 느끼는데, 1/3을 추가로 국가유공자에게 배정하겠다고 하니 학생들이 돌아버린 것임.
98. 3차 인도 파키스탄 전쟁에서 인도가 승리해서, 동파키스탄이 독립했지만, 일부 동파키스탄인들도 전쟁에 참전했었음.
99. 전쟁에 참여한 이들이 방글라데시 독립 후에 정부 집권층을 차지하게 됨.
100. 방글라데시의 독립 유공자가 현 정부의 집권층이라는 말임.
101. 독립유공자를 우대한다고 하지만, 현 정부의 집권층 자녀들을 우대한 것이 됨.
102. 최근까지 집권하던 하시나 총리도 아버지가 인도 파키스탄 전쟁에 동파키스탄의 대표로 참여한 독립유공자의 자녀였음.
하시나 전 방글라데시 총리(왼쪽)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103. 흥분한 학생들은 대대적인 반대 시위에 나섰고, 정부가 이것을 유혈 진압하며 정부 공식 발표 300명의 사망자가 나옴.
104. 시위가 커진 데는 정치적인 문제도 있음.
105. 방글라데시 독립에 참여한 주요인물은 2명이 있었음.
106. 방글라데시의 국부인 세이크 라흐만과 독립군 총사령관을 지낸 지아우르 라흐만이 그들임.
107. 세이크 라흐만은 방글라데시 초대대통령으로 올랐는데, 1975년 군부쿠데타때 대통령과 가족들은 모두 군에 의해 처형됨.
108. 유럽에서 유학중이라 처형을 피할 수 있었던 세이크 라흐만의 딸이 현재 여당 대표이자 집권당 총리였던 세이크 하시나임.
109. 세이크 라흐만과 가족들을 몰살시킨 군부쿠데타의 주역이 독립군 총사령관을 지낸 지아우르 라흐만임.
110. 지아우르 라흐만은 정권을 잡은 후 상대진영에게 암살 당했고, 그의 부인이 야당인 국민당을 이끌고 있는 칼레디 지아로임.
111, 각자 아버지와 남편을 상대진영에게 살해당한 여당과 야당의 총수는 오래전부터 불구대천의 원수 지간 상태임.
112. 현재 집권당이 세이크 하시나가 이끄는 아와미 연맹이라, 정부가 공무원 자리를 할당하면 아와미 연맹 위주로 할당을 할 것이고, 야당인 국민당 몫은 없을 가능성이 높음.
113. 야당의 지지세력들이 흥분한 학생들과 합류하니, 일이 커지기 시작한 것임.
114. 정부가 최루탄, 고무탄에 실탄까지 발사하며 강경 진압에 나섬.
115. 전국에 통행금지령과 휴교령을 내리고, 인터넷, 전화 등을 모두 차단했지만 이천 명 가까이가 사망하자 총리가 사임하고 인도로 튀게 된 것임.
116. 총리가 사임한 후 해외로 도피하고, 방글라데시 대법원이 공무원 할당제에 대해서 수정안을 내면서 시위가 진정되기 시작함.
117. 대법원은 독립 유공자 자녀에게 할당하는 것을 30%에서 5%로 줄이고, 다른 할당제를 대부분 폐지해서, 전체 공직의 93%를 시험으로 뽑자는 수정안을 냄.
118. 현 정부는 국회를 해산하고 임시정부를 구성하기로 합의했고, 시위로 체포된 사람들을 석방하고, 시위 중에 사망하거나 다친 사람들에게 보상을 해주기로 함.
119. 시민단체와 학생대표 등이 정부 제안을 수용해서,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무함마드 유누스를 과도정부의 대표로 제시하게 됨.
120. 무함마드 유누스를 정부가 수용하면서, 시위는 진정상태로 접어들게 됨.
121. 유누스는 8월 8일 과도정부 수반으로 취임을 해서 일을 시작함.
122. 인도로 피신한 세이크 하시나 방글라데시 전 총리는 자기를 쫓아낸 것이 미국이라고 하고 있음.
123. 미국이 군사기지 제공을 요구했는데, 이것을 거절해서 권력을 빼앗겼다는 주장임.
124. 하지만, 문제의 발단이 국가유공자 TO인 것이 너무 명백해서 주장이 먹히지 않고 있음.
한 줄 코멘트. 방글라데시는 총리가 사임해서 해외로 도피하고, 임시정부가 구성되면서 사태가 진정되는듯한 상황임. 먹고사는 문제를 잘못 건드리면 정권이 뒤집힐 정도로 일이 커질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