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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의 팜

아무도 관심 없는 방글라데시 이야기 A/S(feat 구로공단,보름달빵)

메르

2024.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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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ranto28/223546209877

아무도 관심 없는 방글라데시 이야기(feat 정권 퇴진,인도,파키스탄)

제 글이 늘 그렇듯이, 목적지로 직진하지 않고, 돌아돌아 갑니다. 1. 인도 대륙에는 원래 힌두 교도들이 살...

blo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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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방글라데시 이야기를 하면서, 글이 길어지는듯해서 65~70번에서 생략하고 넘어간 부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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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한국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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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197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한국은 경공업에서 중공업으로 주력이 바뀌기 시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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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인건비가 오르면서, 구로공단의 공장들은 인건비가 더 싼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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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70년대 봉제업과 의류업 대국이었던 한국이 80년대가 되며 임금이 올라가자 중국으로 공장이 넘어가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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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2010년이 되자 중국의 임금도 올라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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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의류를 만드는 봉제업 등 수작업 비중이 높은 경공업들이 중국 임금의 1/4수준인 방글라데시 등으로 다시 이동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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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방글라데시는 70년대 한국의 구로공단 등에서 많이 했었던 의류 등 직물 가공업 수출을 시작하며 성장하기 시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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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언급한 에피소드지만, 보강한 부분도 있어서 수정재업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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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60년대 한국은 국가의 모든 역량이 수출에 집중되는 시기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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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한국전쟁후 원조에 의존하던 한국은 핵심가치를 경제성장으로 잡았고, 수출금액으로 목표를 수치화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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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생산기반이 약하고, 기술이 없는 한국의 제품 경쟁력은 가격 밖에 없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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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가격을 낮추는 가장 쉬운 방법은 임금을 낮추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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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사람 손이 많이 필요한 가발,섬유,식품,신발,전자조립등 노동집약적 경공업이 1960년대의 대표 수출산업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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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960년대 한국은 농업국가 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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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인구는 쑥쑥 늘어나는데, 농사지을 땅은 많지가 않아서, 일자리가 없는 젊은이들이 농촌에 넘쳐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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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젊은 여성들도 무엇인가 일을 해야했지만, 농촌에는 농사외에 제대로 할만한 일들이 없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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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한명이라도 입을 줄이려고, 도시를 동경해서, 자아 발전을 위해서 등등의 여러 이유로 농촌의 젊은 여성들은 도시로 상경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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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노동집약적인 생산라인을 갖춘 공장이 이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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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당시 공장은 최대한 낮은 임금에 많은 노동시간으로 노동력을 빼먹는 구조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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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월급제의 외형을 갖췄지만, 목표 생산량을 달성하고, 잔업과 야근을 하는 만큼 수입이 늘어나는 실적 베이스로 돌아가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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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생산량만큼 월급을 가져가는 구조는 오랜 근무시간과 야근, 일요일을 제외한 주 6일 근무를 일반적으로 만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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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976년 삼립식품은 보름달 빵을 출시해서 공전의 히트를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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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보름달처럼 동그란 카스텔라 두개 사이에 버터크림이 발린 빵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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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토끼가 방아를 찧고있는포장지 그림과 "달 달 보름달 삼립빵의 보름달"이라고 시작하는 광고도 히트를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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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상대적으로 싼 가격(100원)에 양도 많아 보름달빵은 소풍갈때 사이다,김밥과 함께 필수품 취급을 받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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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당시 여공들은 밤 10시까지 야근을 하면 간식이 나왔고, 보름달빵이 많이 나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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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여공들은 이것을 먹지않고 모으는 경우가 많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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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고향의 동생들을 생각하며, 모아서 보내려고 보관하다가, 오래 보관된 빵이 상하는 일들이 자주 발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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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빵계가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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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빵이 나오는날 10명이 1명에게 순번대로 모아주면, 빵 10개를 한꺼번에 고향의 동생에게 소포로 부치는 것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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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저녁을 먹은 뒤, 시간이 꽤 지나 출출할 야근시간에 나오는 빵을 먹지않고, 고향의 동생들에게 보내는게 드물지 않았다는 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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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당시 여공 월급이 많지않다보니, 개당 100원짜리 보름달빵도 귀한 선물 대접을 받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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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당시 여공의 80%정도는 기숙사 생활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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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시골생활에 비하면, 난방이 되고, 화장실도 수세식이고 온수도 나오는 기숙사는 인기가 많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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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문제는 기숙사비 부담이 컸고, 외출도 허락을 받아야 하고 횟수 제한이 있는등 엄격하게 생활이 통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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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회사는 탈선과 낭비, 범죄예방등을 기숙사 통제 이유라고 했지만, 여공들을 차질없이 공장에 투입하는 것이 통제의 목적 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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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통제에 불만이 있거나, 비싼 기숙사비가 아까운 여공들은 자취를 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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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5~6명이 돈을 모아서 잠만 간신히 잘 수 있는 좁은 방에서 자취하는 일명 벌집이 가장 보편적인 자취방법 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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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문을 열면 곤로와 수도꼭지가 있는 작은 부엌이 있고, 부엌과 연결되어 좁은 방이 나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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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벌집은 보통 2~3층에 50~100평 정도의 양옥주택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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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겉으로는 번듯하지만, 지상과 지하 각층마다 통로에 따라 번호가 매겨진 10여개의 좁은 방이 벌집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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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벌집의 화장실은 층마다 공동으로 1~2개의 변기만 있었고, 2~3명이 간신히 잘 수 있는 방에 세입자가 6명인 경우가 많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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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24시간 쉬지않고 가동되는 수출공단의 공장들은 3교대가 많았고, 근무 시간대가 다른 여공들이 시간을 나눠 방을 쓰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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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당시 입사 3년차 숙련공이 기본근무외 48시간 잔업과 2일의 철야근무를 해야 5만9천원을 받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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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방1칸의 월세가 5만원정도니, 여러명이 월세를 나눠서 개인부담을 줄일 수 밖에 없었던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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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4명이 동시에 자려면, 1명씩 머리방향을 반대로 한채 옆으로 누워 칼잠을 자야했고, 여공들은 자기방을 닭장이라고 부르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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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꽃 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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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1976년 3월, 대통령이 공단을 시찰하며 둘러보는 과정에서 10대 여공이 대통령이 온줄도 모르고 일에 열중하고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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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대통령이 그 여공에게 "네 소원이 뭐냐"라는 질문을 던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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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여공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다음과 같이 답변을 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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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또래의 아이들과 같이 교복 한번 입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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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독재라고 부르는 통제받지 않는 권력은 개인의 자유에 대한 제한,힘에 의한 통치등 수많은 단점이 있지만, 몇가지 장점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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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몇가지 장점중 하나가 실행력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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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1년도 안된 1977년 2월, 산업체 부설학교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그해 3월1일부터 바로 개교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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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1977년 시작된 산업체 부설학교는 1981년 143개(고등학교 90개, 중학교 53개)까지 확대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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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당시 노동청 조사에 따르면, 구로공단의 여공들은 국졸이나 중퇴가 63%로 학력이 높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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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이런 여공들에게 가장 부러운 것은 또래의 학생들 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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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단발머리, 하얀 세일러칼라에 곱게다린 검정색 교복을 입고 책가방을 든 여학생을 부러워하고, 자신의 처지를 생각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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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산업체부설학교가 생기면서 학교에 다니게 된 여공이 가장 먼저 한 것이 학생과 같은 단발머리로 머리를 자르는 것이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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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1977년 구로공단과 영등포에 편성된 특별학급은 대방여중, 영등포여상, 영등포공고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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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주간반 여공들은 오후 5시40분 공장 일을 끝내고 교복으로 갈아입은 후, 6시반부터 9시반까지 하루 3시간 수업을 받기 시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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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야간반 여공들은 훨씬 힘든 수업을 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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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오후 9시반부터 새벽 5시반까지 공장일을 하고, 8시까지 학교에 가야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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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졸음이 미친듯이 몰려오는 시간에 공부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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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강도높은 공장일을 한 뒤 공부를 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고, 대기업 주관이 아닌 일반적인 산업체 부설학교는 선생들의 자질도 상대적으로 낮다보니, 결석율이 높아지며 형식적인 운영만 하는 경우가 많아지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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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198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노동집약적인 섬유산업이 쇠퇴하기 시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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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seumsvictoria,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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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초등학교나 중학교만 졸업하고 공장에 취업하는 경우가 줄어들면서 산업체 부설학교는 줄어들기 시작했고, 2016년 부산의 시온식품과학고등학교를 마지막으로 산업체 부설학교는 완전히 사라지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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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197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한국은 경공업에서 중공업으로 주력이 바뀌기 시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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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노동집약산업들이 줄어들면서 여공들도 줄어들기 시작했고, 구로공단의 공장들은 인건비가 더 싼 방글라데시나 미얀마등으로 이동하기 시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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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구로공단은 서울디지탈산업단지로 이름이 바뀌었고, 여공들이 떠나간 벌집은 두세개를 하나로 합쳐 원룸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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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공장과 가깝고 주거비용도 저렴한 가리봉 5거리의 주류는 외국인 노동자들로 바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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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 코멘트. 공순이라고 함부로 불리던 이들은, 시골집의 동생을 생각해서 허기를 참고 보름달빵을 모으던 우리의 누이들 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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