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의 팜
도자기 이야기 (feat 청화백자, 아리타도자기, 하멜 표류기)
메르
2024.09.18
명절 저녁이라 가벼운 내용입니다.
1. 도자기는 도기와 자기를 합친 말임.
2. 800~1000 ℃에서 구운 것을 '도기'라고 하고, 1300~1500 ℃에서 구운 것을 '자기'라고 해서, 합쳐서 도자기라고 부름.
3. 800℃ 보다 낮게 구워서 만들면 토기임.
4. 16세기의 유럽은 동양보다 과학이 뒤떨어져 있었음.
5. 유럽은 토기와 도기까지는 생산할 수 있었지만, 1300℃ 이상에서 버틸 수 있는 용광로를 만들지 못해 단단한 자기를 만들지 못했음.
6. 16세기에 자기를 생산할 수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 2개국뿐이었음.
7. 조선과 중국임.
8. 당시 유럽에서 인기를 끌었던 도자기는 청화백자였음.
9. 청화백자의 청색은 회회청(回回靑)이라는 코발트가 안료로 사용됨.
10. 코발트는 1300 ℃ 이상의 고온에서 견딜 수 있는 유일한 청색 염료였고, 코발트가 들어가자 청화백자가 나올 수 있는 것임.
11. 코발트는 페르시아의 아라비아반도에서 발견되어, 중국을 통해서 조선으로 들어옴.
12. 코발트는 페르시아-중국을 통해서 들어오는 수입품이다 보니, 가격이 엄청나게 비싼 재료였음.
13. 세조는 명나라에서 들어오는 청화백자를 본 후, 전국에 포고를 내려 조선에서도 청화백자를 만들라는 지시를 함.
14. 결국, 강진군과 순천에서 코발트 광산을 발견했고, 토청이라고 하는 국내산 청화 안료를 생산할 수 있었음.
15. 1464년, 청화백자를 만드는 데 성공한 것임.
16. 조선의 도자기는 관에서 만들어 양반들에게 내수로 소모되는 정도라서, 유럽에는 중국의 청화백자가 들어가게 됨.
17. 중국산 청화백자는 유럽 귀족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고, 청화백자 한 점은 좋은 집 한 채 가격을 받을 정도로 인기를 끌게 됨.
18.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직원이었던 22살 청년 하멜이 폭풍을 만나 36명의 동료와 함께 제주도에 떠내려 옴.
19. 하멜은 13년 동안 조선에 억류 생활을 하다가 1666년 9월 배를 타고 일본으로 도주했고, 1668년 7월 네덜란드로 귀국을 함.
20.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로 복귀한 하멜은 자신이 회사일을 하다가 표류를 했으니 근무의 연속으로 인정해 줘야 한다고 주장함.
21. 하멜은 그동안 밀린 임금을 달라는 목적으로 조선에서의 체류일지와 정보를 정리해서 동인도 회사에 보고서를 제출함.
22. 이것이 '하멜의 제주도 난파기'인데, 하멜은 이 기록을 근거로 14년 치 급여를 한꺼번에 지급받을 수 있었음.
23. 동인도 회사에 제출한 하멜의 보고서가 시중에 유출되어 "스뻬르베르호의 불행한 항해일지"라는 이름으로 출간됨.
24. 이 책은 '하멜 표류기'로 불리며 유럽에서 베스트셀러가 됨.
25. 하멜표류기는 1668년 네덜란드에서 처음 출간되었고, 프랑스어판, 독일어판, 영역판이 출간되면서 조선을 유럽에 알렸음.
26. 하멜의 보고서로 조선도 청화백자를 만들 수 있는 나라라는 것을 동인도 회사가 알게 됨.
27. 1669년, 동인도 회사는 건조 중이던 1000톤 급 대형 상선의 이름을 "코리아호"로 바꾸며, 조선과 무역 준비를 시작함.
28. 코레아호는 1669년 5월 20일, 휠링겐을 출항해서 조선을 향해 항해를 시작했고, 인도네시아에 도착하게 됨.
29. 당시 일본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로부터 수입한 무명과 후추 등을 조선에 팔아서 수십에서 수백 배 이익을 먹고 있었음.
30.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조선과 직무역을 하면 이런 이익이 사라질 것을 일본 막부는 걱정을 함.
31. 일본 막부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조선과 통상하면 일본의 네덜란드 무역관을 폐쇄하겠다는 통보를 하게 됨.
32. 당시 일본 규슈 사가현 아리타에서는 임진왜란 때 잡혀간 도공 이삼평의 후예들이 1616년부터 자기를 만들고 있었음.
33. 일본은 아리타의 자기를 한국 청화백자의 대안으로 제시함.
34. 아리타의 자기는 단순한 청색의 중국 자기를 퀄리티 면에서 압도하며 유럽에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함.
35. 70년 동안 700만 점의 아리타 자기가 유럽으로 팔려나갔고, 19세기까지 2천만 점의 도자기가 일본에서 유럽으로 수출이 됨.
36. 찻잔의 받침과 찻주전자를 만든 것은 아리타 자기가 처음이었음.
37. 티타임이라고 하는 유럽 귀족들의 티 문화가 시작된 찻잔 세트는 아리타 자기가 기원인 것임.
38. 코리아호는 인도네시아에서 10년간 대기를 타다가, 결국 조선까지 오지 못하고 1679년 11월 15일 폐선 하게 됨.
한 줄 코멘트. 역사를 보면, 현재와 많은 것이 비슷한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을 얄밉게 볼 수 있지만, 자국을 위해 합리적 행동을 한 것일 수도 있다. 코리아호가 조선에 도착했다고 해도, 조선이 무역을 수용할 내부 상황이 아니었다. 큰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개인과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의 제대로 된 지원도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