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의 팜
급변하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근황
메르
2024.11.21
변화가 있어서 정리해 봅니다.
늘 그렇듯이, 과거에서 시작합니다.
1. 오래전 러시아의 본진은 현재 우크라이나 수도인 키예프에 있었음.
2. 1240년 몽골군이 러시아에 침입해서 키예프는 쑥대밭이 되었고, 러시아는 본진을 동북부로 이전함.
3. 동북부로 이전한 본진이 현재 러시아 수도인 모스크바임.
4. 러시아 사람들은 예전 수도였던 키예프가 있는 우크라이나를 같은 어머니를 가진 동생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이유임.
5. 두 나라가 키예프에서 시작을 했고, 일부가 모스크바로 이동을 했으니,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한 몸이라는 시각이 강한 것임.
6.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영토로 유지되다가, 1차 세계대전 때 러시아가 망하자, 소련과 폴란드가 분할해서 점령함.
7. 1932년, 소련이 지배한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큰 문제가 발생함.
8. 소련의 스탈린이 우크라이나 농촌지역을 집단농장으로 전환한 것임.
9. 우크라이나 농민들에게 가축과 식량 등을 집단농장에 다 내놓고, 공동 경작을 해서 배급을 받고 먹고살라고 함.
10. 농지와 가축, 식량의 소유권은 국가가 가지고, 집단농장에서 나오는 산출물은 국가가 균등하게 나누어주겠다는 공산주의 정책이었음.
11. 농민들은 열심히 일해도 개인에게 추가로 떨어지는 것이 없어지게 됨.
12. 집단농장 정책이 선포되자, 농민들은 국가소유로 전환될 사유재산을 먹어치우거나 팔아버림.
13. 감자와 소금은 집단농장 정책이 발표된 후 이틀 만에 모두 판매되었고, 농사에 필요한 소, 돼지 등 가축들을 잡아먹기 시작함.
14. 이런 타이밍에 2년 연속 역대급 대흉년이 와버림.
15. 강제로 집단농장에 수용되었는데, 농사지을 가축도 없고, 다음 추수 때까지 먹고 살 식량도 없는 데다, 2년 연속 대 흉작까지 와버린 것임.
16. 우크라이나의 5천만 명 인구 중 1천만 명이 굶어 죽는 대참사가 발생하게 됨.
17. 대략 인구의 20%가 굶어 죽었음.
18. 도시지역은 상대적으로 집단농장 피해를 겪지 않았음.
19. 우크라이나 농업지역 주민들이 소련을 이어받은 러시아에 치를 떠는 이유임.
20. 우크라이나는 도시지역이 친러, 농촌지역이 반러가 되었는데, 인구수가 비슷해서 친러,반러정권이 교대로 집권을 함.
21. 2010년, 친러시아 성향인 야노코비치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문제가 시작됨.
22. 야누코비치는 대통령 취임후, 차기 대권 유력주자인 티모센코를 러시아 가스협상관련 배임혐의로 기소를 했고, 7년형이 선고됨.
23. 티모센코가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고정가격이 아니라 국제시세보다 30% 저렴한 변동가격에 가져오는 협상을 배임행위로 본 것임. .
24. 국제시세가 크게 뛰어버리는 바람에 고정가격으로 계약을 체결한 것보다 훨씬 비싸게 가져오는 결과가 된 것임.
25. 협상실수가 죄목이라는 점에서 논란이 일었고, 러시아 뿐만 아니라 서방의 국제인권 감시기구등이 정치적 탄압이라며 비난에 나서게 됨.
26. 티모센코외에도, 내무장관,경제장관등으로 수사가 확대되어, 내무장관은 4년형을 받았고, 경제장관은 영국으로 망명을 함 .
27. 야누코비치는 헌법도 바꿔서, 대통령이 총리와 내각을 직접 임명하고, 의회 동의없이 내각을 해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감.
28. 야누코비치의 결정적인 문제는 경제적인 무능과 부패 였음.
29. 2012년에 우크라이나는 브라질,콜럼비아와 함께 세계 3대 부패국가에 꼽힐 정도로 집권층의 부정부패가 만연했었음.
30. 우크라이나는 경제위기에 빠졌고, 외환보유고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선택의 기로에 처하게 됨.
31. 경제위기에 빠져 외환이 말라버린 우크라이나에 돈을 빌려주겠다는 곳은 두곳이 있었고, EU와 러시아 였음.
32. EU는 200억달러, 러시아는 150억달러를 차관으로 주겠다고 했는데, EU의 지원에는 조건이 달려 있었음.
33. 우크라이나는 IMF로부터 몇차례 차관을 제공받고도 상환하지 못한 상황이라, EU는 재정지출을 줄이기 위해 연금의 삭감을 내세운것임
34. 국민연금을 삭감한다는 것은 정권 지지율이 폭락한다는 말과 동일함.
35. 러시아의 차관에는 연금삭감과 같은 조건이 붙지않았고, 러시아산 천연가스 가격을 더 낮춰주겠다고 제안함.
36.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친러시아 정권을 유지시키려는 목적이 강해서 조건이 좋았던 것임.
37. 2013년 12월, 야누코비치는 러시아의 차관을 받기로 결정함.
38.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선택하자, 반러시아 지역인 키예프를 포함해서 서부 우크라이나를 중심으로 대대적이 시위가 일어나기 시작함.
39. 이때 일어난 대대적인 시위를 유로마이단 혁명이라고 부르는데, 유로는 유럽, 마이단은 광장을 뜻하는 친유럽 시위였음.
40. 2014년 2월, 경찰은 자동소총등을 동원해서 시위대에게 발포를 했고, 시위는 격렬해지게 됨.
41. 친러정책의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가 독재정권 타도로 바뀌게 된 것임.
42. 결국, 야누코비치와 측근들이 러시아로 도피를 하면서 정권이 바뀌게 됨.
43. 반러시아 정부가 수립됨.
44. 우크라이나에 친러정권이 무너지고 반러정권이 들어서자, 러시아는 가만있지 않았음.
45. 수백 년 동안 크림반도는 여름철 기후가 쾌적해서 러시아 황제를 비롯한 귀족들과 공산당 간부들이 즐겨 찾는 소련의 휴양지였음.
46.1954년, 소련의 흐루쇼프(흐루시초프)는 러시아 소유였던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에게 넘겨줌.
47. 흐루쇼프는 스탈린이 죽은 뒤 벌어지고 있는 권력투쟁에서 우크라이나 공산당의 지지가 필요하던 때였음.
48.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에게 넘겨줬다고 해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모두 소련연방이라,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던 것임.
49. 소비에트 연방(소련)이 해체되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별개의 국가로 갈라지자 상황이 복잡해짐.
50. 크림반도에는 세와스토폴이라는 군항이자 휴양지가 있었음.
51. 세와스토폴은 가장 추운 2월달에도 평균 온도가 영상 3도 정도이고, 가장 더운 7월이 23도 정도인 곳임
52. 겨울에도 바다가 얼지 않아 러시아 흑해함대가 기항으로 쓰고 있었는데, 우크라이나 땅이 돼버린 것임.
53. 소련이 붕괴하며, 우크라이가 소련에서 분리되는 과정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세오스토플에 대해 2042년까지 임대계약을 체결함.
54. 러시아 해군이 세와스토폴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러시아 유일의 부동항이 우크라이나 소유라는 점이 러시아의 신경을 계속 건드림.
55.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물러나고 친서방 정권이 수립되자, 우크라이나는 임대 만기 전에 , 세와스토폴의 임대료를 4배까지 올려버림.
56. 아파트 월세계약을 했는데, 임대차 만기가 되기전에 월세를 4배나 올려버린 것과 비슷함.
57. 우크라이나 의회는 우크라이나어와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던 러시아어의 제 2 공용어 지위를 박탈하는 안건도 통과시킴.
58. 제2 공용어법은 지역별로 특정 외국어를 쓰는 소수민족의 비율이 10%를 넘기면 그 언어를 해당지역의 제2 공용어로 인정하는 법률임.
59. 동부 지방, 특히 크림반도에는 우크라이나인보다 훨씬 많은 러시아계 주민들이 살고 있었음.
60. 러시아어 사용 금지는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일부로 생각하고 있던 푸틴에게 그냥 둬서는 안되겠다는 확신을 심어준 사건이었음.
61. 러시아는 러시아계 주민들이 대부분인 크림반도에 전투부대를 진입시켰고, 크림반도 주민들에게 러시아 합병 투표를 진행함.
62. 크림반도는 주민의 97%가 러시아계라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있는 친러시아 지역이었음.
63. 크림반도 주민의 96%가 러시아와 합병에 찬성 표를 던지며 크림반도는 러시아로 넘어 감.
64. 강제로 실시된 공개투표라서 그런 결과가 나왔다는 기사가 보이지만, 주민들의 분포를 보면 96% 찬성이 이상한 결과는 아님.
65. 크림반도 주민들이 크림자치공화국으로 독립한 후 러시아에 편입해 버렸는데, 푸틴이 예상하지 못했던 변화가 시작됨.
66. 우크라이나 선거에 큰 변화가 일어남.
67. 친러정당에 몰표를 몰아주던 크림반도 주민들이 러시아로 가버리니, 친러시아 표가 줄고 반러시아 표가 자연스럽게 늘어나게 됨.
68. 1인 1표를 행사하는 민주주의 투표 제도에서, 팽팽하던 우크라이나의 친러와 반러 진형이 반러 쪽으로 힘이 쏠려버린 것임.
69. 우크라이나의 언어 사용 분포가 아래와 같음.
70. 가장 아래쪽의 푸른 꼭지가 크림반도임.
71. 전체가 푸르다는 것은 주민 대부분이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친러 지역이라는 말임.
72. 크림반도 우측의 푸른 지역이 돈바스 지역임.
73. 돈바스 지역도 러시아어 사용 비율이 90%가 넘는 지역임.
74.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와 돈바스지역은 전통적인 친러 지역으로 친러정권의 표밭이었음.
75. 크림반도와 돈바스 지역 중 크림반도가 러시아로 넘어가자, 친러와 반러간 표 대결에서는 답이 나오지 않게 됨.
76. 돈바스 지역도 크림반도처럼 우크라이나로부터 벗어나 자치 정부를 수립하겠다는 시위가 시작되고 내전으로 확대되기 시작함.
77. 2015년 2월, 프랑스 올랑드 대통령과 독일 메르켈 총리의 중재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돈바스 지역 대표 간에 협정이 체결됨.
78. 민스크 협정임.
79. 민스크 협정은 우크라이나가 개헌을 해서 돈바스 지역 자치권을 인정하는 조건으로 양측이 내전을 중단하는 것이 합의 내용이었음.
80. 2015년 8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세력들이 민스크 협정 이행을 위한 돈바스에 자치권을 부여하는 개헌안 반대 시위를 시작함.
81. 반러 세력이 대세인 우크라이나 정부는 민스크 협정을 이행하지 않았고, 돈바스 지역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함.
82. 2019년에 우크라이나는 공공장소에서 러시아어를 사용하면 벌금을 부과함.
83. 2021년에는 친 러시아 성향의 개인과 단체들의 자산을 동결하고 금융거래를 금지시키게 됨.
84. 러시아는 돈바스 지역의 러시아계 주민들의 자치를 보장하기로 한 민스크 협정을 지키라고 우크라이나에 요구함.
85.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요구를 무시하고, 테러리스트에 대한 진압작전이라며 돈바스에 대한 군사작전을 강행한 것임.
86.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배경이 되는 사건이었음.
87. 현재 러시아가 점령한 지역이 크림반도와 돈바스 지역임.
88.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러시아계가 대부분인 지역이고, 현재 점령지역을 유지하며 우크라이나와 휴전을 하는 것이, 푸틴의 목표임.
89. 푸틴은 목표가 달성된 상황임.
90.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을 보류하고, 현 점령지를 유지하는 조건으로 휴전을 하자"라는 메시지를 계속 서방에 던지고 있는 이유임.
91. 트럼프는 본인이 대통령에 취임하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을 즉시 중단시킬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음.
92. 어떤 방법으로 전쟁을 중단시킬 것인지, 어느 정도 이야기가 나오고 있음.
93.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20년간 보류하고, 현 상태에서 휴전을 한 뒤, 휴전선을 완충지대로 만들자는 생각임.
94. 현재 점령지에 한국의 비무장지대처럼 완충지대를 만들고, 1,200km에 달하는 완충지대는 나토의 EU 국들이 지키게 하겠다고 함.
95. 푸틴 입장에서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제안임.
96. EU 입장에서도 솔깃한 제안임.
97. EU는 우크라이나가 좋아서 지원을 하는 것이 아님.
98.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손에 넘어가면, 방어가 힘든 평원이 러시아와 EU 국들 사이에 열리게 됨.
99. EU 국들의 목표는 우크라이나를 완충지대로 존속시키겠다는 것이고, 크림반도와 돈바스 지역을 러시아가 가지는 것은 알빠노임.
100. 반면에 우크라이나는 흑해로 나가는 크림반도가 막히고, 경제권이 몰려있는 돈바스 지역이 러시아에 넘어가는 최악의 상황이 됨.
101. 우크라이나가 어쩔 수 없이 휴전 협상장에 나온다면, 쿠르스크 지역의 공방이 치열해질 것임.
102. 과거 한국전에서도 전쟁이 가장 격렬했던 시기는 휴전협상을 시작한 이후였음.
103. 휴전협상이 종료될 때의 영토로 휴전선이 그어지기 때문에, 최대한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게 됨.
104. 러시아 영토였다가 우크라이나가 기습 점령한 쿠르스크 지역이 공방의 핵심이 될듯함.
105. 러시아는 러시아 영토였던 쿠르스크를 뺏기고 휴전을 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것임.
106. 쿠르스크 지역은 북한군이 참전한 지역임.
107. 휴전이 예상되면 가장 치열한 공방이 쿠르스크에서 진행될 것이고, 북한군의 소진도 엄청난 규모가 될 것임.
108. 바이든은 트럼프 취임전에 의회가 승인한 70억 달러의 군사원조를 마무리하려고 서두르고 있음.
109. 휴전을 앞둔 공방전에서 최대한 우크라이나의 전투력을 끌어올려서 휴전협상에 조금이라도 유리한 지점을 주려는 것임.
110. 바이든이 이번에 서방 무기의 러시아 영토 사용 제한을 푼 것도 이것으로 해석될 수 있음.
111. 이번에 사용 제한을 해제한 것은 최대 사거리 190마일(300km) 이내의 미사일 등 공격 무기들임.
112. 러시아 영토 중 모스크바는 사정거리에 들어가지 않지만, 돈 바스 지역의 후방과 쿠르스크가 공격 대상에 놓이게 되는 것임.
113.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간절하게 원하던 서방 무기의 러시아 영토 사용 제한이 풀렸지만, 무기 지원이 줄어들면 의미가 없어짐.
114. 쿠르스크를 레버리지 삼아 최악인 휴전협상 상황을 조금이라도 개선해 보려는 게 한계일듯함.
115. 우크라이나는 후회가 많을 것 같음.
116. 우크라이나는 원래 전투력이 짱짱한 나라였음.
117.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할 때의 우크라이나는 소련의 군사장비와 시설을 그대로 인수받았음.
118. 1991년의 우크라이나는 78만 병력에 세계 3위의 핵무기 보유국이었음.
119. 우크라이나는 10발의 핵탄두를 탑재하고 11,000km를 비행할 수 있는 Tu-160전략 폭격기 44대를 보유하고 있었음.
120. 핵탄두 1,240발에 대륙간 탄도미사일 176기가 들어있는 미사일 사일로(SILO)도 가지고 있었음.
121. 필요하면 1,081발의 X-22H Burya 순항미사일에 1,240발의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막강한 전력이었음.
122. 1994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미국, 영국과 군축에 합의를 해서 핵을 포기함.
123. 미국과 영국은 우크라이나의 핵무기가 테러세력에게 흘러가는 것을 두려워했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가지는 것을 싫어함.
124. 러시아, 미국, 영국의 이해관계가 일치했고, 우크라이나가 핵 포기를 하면 러시아, 미국, 영국이 연대해서 지켜주겠다는 합의를 함.
125. 우크라이나는 이 합의를 믿었음.
126. 수천 기의 핵탄두를 모두 해체해서 비핵국이 됨.
127. 6,500대의 탱크가 776대로 줄어들었고, 1,500대의 전투기를 208대로 줄이는 등 군축도 확실하게 이행함.
128. 핵 포기 합의문서에 서명을 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미국과 영국은 지켜주겠다는 합의 이행에 주저하고 있는 상황이 됨.
129. 우크라이나는 이제서야, 나토 가입이 되지 않으면 자체 핵 무장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일임.
한 줄 코멘트. 트럼프의 제안은 미국과 EU, 러시아가 모두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는 제안임. 그만큼 우크라이나에게는 최악의 휴전 방안임. 바이든은 균형을 조금이라고 맞추기 위해, 퇴임전에 최대한 무기 지원을 해주려고 하는 데 한계가 있어 보임. 국가 간 약속은 함부로 믿는 게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