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의 팜

직장생활썰로 시작하는 카드사태 이야기

메르

2024.12.26

 

 

 

주절주절글을 번호로 쓰기는 처음인듯하네요.

개인적인 글이 정보글로 연결되어서 그렇습니다.

1. 신입사원으로 처음 입사한 회사에는 사원과 대리 사이에 주임이라는 직급이 있었음.

© dewyboy749, 출처

2. 입사 후 5년은 지나야 대리가 되니, 사원으로 지내는 기간이 너무 길다고, 중간에 주임이라는 간판을 달아주는 것 같았음.

3. 호칭이 주임으로 바뀌지만 처우 등은 사원과 큰 차이가 없으니, 주임은 대리보다 사원 쪽에 가까운 직급임.

4. 주임이었던 시절 이야기임.

5. 당시 직원들이 가장 신경을 쓰는 회의는 티타임이라고 불리는 오전의 임원회의였음.

© MeshCube, 출처

6. 아침 7시부터 시작되는 임원 회의는 어떤 날은 30분 만에 끝이 나기도 하고, 어떤 날은 9시가 지나도 끝이 나지 않고 계속되었음.

7. 임원 회의에서 사장이 매일 보는 임원들 말고, 신선한 직원들의 생각을 들어보겠다고 함.

8. 직원 중에도 가장 영한 사원급 중 1명을 선정해서, 임원 회의에서 발표를 하는 일이 시작됨.

9. 발표 자체는 1page 문서에 발표 시간 5분으로 가볍게 진행됨.

10. 솔까, 임원들이야 유치원 재롱잔치 보듯 가볍게 듣고, 한두 마디 코멘트하는 자리지만, 발표하는 사원은 부담이 장난이 아닌 자리임.

11. 대충, 이 정도 썼으면 알겠지만, 발표자로 내가 선정됨.

12. 주제는 자유주제, 문서는 1page, 발표 시간 5분 내외 정도의 가이드라인만을 팀장이 던져주고 사라짐.

13. 팀장도 자유로운 영혼에 속하는 사람이었음.

14. 보통 이런 숙제가 생기면 개인이 아니라 팀 전체가 준비를 같이 하지만, 팀장은 알아서 하라는 한마디로 끝을 냄.

15. 다음에 이 팀장에 대해서 글을 쓸지 모르겠지만, 모두 까기 스타일로 경제계에서 꽤 높이 올라가며 알려지게 된 사람임.

16. 팀장만 자유로운 영혼이 아니었음.

© UCHEOL, 출처

17. 나도 영혼이 자유로운 쪽에 속하고, 여기에다가 INTP임.

18. 영혼이 자유로운 INTP는 발표가 아니라 귀찮은 게 가장 무서움.

19. 1page 짜리 문서는 30분쯤 뚝딱하면 만들 수 있어 보였고, 동네 할아버지들에게 현업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 정도로 준비를 함.

20. 이때가 2002년경이었음.

21. 발표 예정 티타임 일주일 전에 발표를 하라는 통지를 받았는데, 발표일이 이틀 정도가 남았음.

22. 슬슬 뭐를 발표할까 생각하기 시작함.

23. 최근 신경을 간질간질하게 거슬리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결정하였음.

23. 경제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징후가 보였던 것임.

24. 한 장의 발표 자료를 다음과 같이 구성했음.

25. A4용지를 횡으로 눕혀서, 왼편에는 IMF가 오기 전에 경제지의 헤드라인들을 모아 놓았음.

26. 그리고, 오른편에는 최근 경제지의 헤드라인들을 배치함.

© mistyrain, 출처

27. 물론, 아무 기사나 모은 것이 아님.

28. 경제 위기를 알려주는 징후들이 있는 1996~1997년 기사와 최근 기사들을 모아서 좌우가 비슷하게 배치한 것임.

29. 다른 코멘트들은 하나도 없고, 횡으로 된 A4지에 경제신문의 제목들만 주욱 나열을 한 발표 문서였음.

30. 발표날이 되었음.

31. 왼편과 오른편을 비교하면서, "실무자가 보기에는 요즘 과거와 비슷하게 흘러가는 느낌이 든다" 정도의 발표를 했음.

32. 발표 내용의 포인트는 97년 위기는 외환 쪽이었는데, 이번에는 카드가 이상하다는 것이었음.

© 공원남, 출처

33. 나는 발표 후에 회의장을 빠져나왔지만, 이날 티타임은 점심시간까지 계속되었던 기억이 남.

34. 발표 1년쯤 뒤에 카드사태라는 사태가 터졌음.

35. 신용카드가 이상해진 것은 1999년부터 시작됨.

36. IMF 외환위기를 극복한 정부는, 사회에 퍼져있는 탈세 풍조를 해결하는 방법을 고민함.

37. 탈세의 해결 방안으로 나온 것이 신용카드였음.

38. 현금이 아니라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매출이 투명하게 드러나게 됨.

39. 정부는 탈세를 막기 위해 신용카드 사용을 적극적으로 권장했고, 신용카드에 대한 규제가 대폭 완화되기 시작한 것임.

40. 99년 5월에 현금서비스 한도가 폐지되었고, 6월에는 근로소득자의 소득공제에 신용카드 사용액이 포함되기 시작함.

41. 자영업자들이 신용카드를 받지 않고 현금을 요구하는 것을 처벌하기 시작함.

42. 신용카드 사용을 정부 차원에서 권장하는 사회 분위기가 시작된 것임.

43. 1998년 63조 원 수준이었던 신용카드 사용액은 4년 만인 2002년에 622조 원으로 10배 가까이 늘어나게 됨.

44. 신용카드를 많이 쓰면, 내수가 활성화되고, 세금도 잘 걷히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고, 지하경제도 축소를 시키게 됨.

45. 문제는 신용카드에 대한 규제가 대폭 완화된 상태에서 카드사들 간에 시장점유율 경쟁이 치열하게 시작된 것임.

46. 당시 LG는 대부분의 계열사들이 삼성에 밀리는 상황인데, 카드사만은 1위를 차지할 정도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전개함.

47. LG뿐만 아니라 모든 카드사들은 길거리에 가판대를 설치하고 사은품을 주면서 카드 신청을 권유하였고, 연회비 대납이 기본이 됨.

© markuswinkler, 출처 Unsplash

48. 신용카드에 대한 TV 광고 규제도 없던 시절이라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여러분 부~자 되세요"등의 카드 광고가 쏟어짐.

49. 1천만 장 수준이었던 카드가 2002년에는 1억 장을 넘겼고, 경제활동 인구 1명당 5장의 카드를 가진 상황이 됨.

50. 이런 분위기에서 추가적인 불쏘시개가 시장에 투척됨.

51. 론패스라고 부르는 대출전용카드들 이었음.

© 공원남, 출처

52. 론패스는 목돈을 대출받고 매달 10%씩 갚아나가는 구조인데, 한도가 유지되니 갚은 금액은 ATM에서 손쉽게 재대출이 가능했었음.

53. 삼성이 만든 아하론패스는 매출 측면에서 대성공을 거두게 됨.

54. 삼성이 아하론패스를 만들어 히트를 치자, 현대도 드림론패스를 만들어서 론패스 시장경쟁에 가세를 함.

https://youtu.be/48Ov4ej8HBc?si=9aLfgiXzSEkcF30m

55. 갑자기 든 생각인데, 위 광고의 2001년 박진영이 지금과 외모가 비슷함.

56. 확실히, 젊을 때 노안이 나이가 들면 동안이 되는 것 같음.

57. 하여튼, 신용카드는 현재의 소비를 미래의 빚으로 떠넘기는 행위임.

58. 한도가 있을 때는 신나게 쓰지만, 빚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쌓이는 구조가 카드였고, 론패스 였음.

59. 당시는 금융회사 간 대출정보 공유가 제대로 안되던 시기였음.

60. 대출정보 공유가 안되니, 카드사들은 이 사람이 다른 카드사에 얼마의 카드론, 현금서비스가 있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는 말임.

61. 다른 카드사들의 상황을 모르다 보니, 문제가 커지게 됨.

62. A 카드사의 카드론과 현금서비스, 론패스 한도가 차면, 다른 카드사의 카드를 만들면 새로운 한도가 나오게 됨.

63. 한도가 꽉 찬 카드사의 결제 대금을 새로 만든 카드사의 카드론,현금서비스,론패스등으로 충당하면 다시 카드 사용이 가능해졌음.

64. 카드사들은 이런 상황을 모르고(?), 자기 카드사의 대출금액과 거래실적만을 보면서 계속 한도를 늘려주게 됨.

65. 2002년에는 전체 카드 이용금액 중 60%가 현금서비스,카드론,론패스 였을정도로 카드를 통한 대출이 유행이었음.

66. 카드사태가 터진 후 "현금서비스 돌려 막기"가 부각되었지만, 카드론, 론 패스, 일반적인 카드 사용도 똑같은 상황이었던 것임.

67. 2002년 9월, 신용카드와 현금서비스 정보가 금융기관들 간에 공유되기 시작함.

68. 카드사들은 대출정보 공유 결과를 보고 경악을 하게 됨.

69. 그때까지는 자기 카드사 대출만 알 수 있었는데, 다른 카드사를 포함한 전체 금융기관의 대출들을 보고 심각성을 깨달은 것임.

70. 가장 동작이 빨랐던 회사는 삼성카드였고, 가장 동작이 늦었던 회사는 LG 카드였음.

71. 삼성카드부터 현금서비스, 카드론, 론패스 한도를 줄이기 시작했고, 시차를 두고 현대가 따라옴.

72. 카드사들이 하나둘 한도를 줄이자 카드 돌려 막기가 힘들어졌고, 돌려 막기가 안되니 신용불량자들이 쏟아지기 시작함.

73. 결국 업계 1위였던 LG 카드가 망해서 신한으로 넘어갔고, 다른 카드사들도 조 단위 손실을 보는 카드사태가 일어난 것임.

74. 과거 이야기를 주절주절한 것은 카드사태 이후에 나온 대책을 참고할 필요가 있어서임.

75. 이때 캠코 산하에 한마음금융이라는 배드 뱅크가 만들어짐.

76. 한마음금융은 18만 명의 카드 빚 2조 원을 인수해서, 연체이자를 감면하고 10년간 분할상환을 해줌.

77. 한마음금융은 2020년 청산 때까지 2조원중 63%를 회수했고, 회수하지 못한 손실은 카드사 등 민간 금융사가 부담을 함.

78. 카드대란이 워낙 크게 터지다 보니, 1차 18만명으로 해결이 되지않아 2005년 2차 배드 뱅크인 '희망모아'가 만들어짐.

79. 희망모아는 원금의 30%를 탕감하고, 남은 금액을 8년에 걸쳐서 분할상환하도록 해줌.

80. 13조 원이 지원된 희망모아는 2020년 청산 때까지 21%밖에 회수되지 못하고 끝이 남.

81. 채무에 원금 탕감을 해주기 시작한 것은 희망모아부터 였음.

82.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대부업이나 고금리 대출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신용 회복기금이라는 배드 뱅크가 만들어짐.

83. 신용 회복기금은 7조 원 규모로 운용이 되었음.

84. 외환위기, 카드사태, 금융위기 등 위기급 사태가 터지면 배드 뱅크가 만들어졌다는 말임.

85. 현재 배드 뱅크는 정부 주도로 운영되는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KAMCO)와 민간주도의 연합자산관리(유암코)가 돌아가고 있음.

86. 새 출발 기금은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캠코에서 진행되고 있음.

87. 한마음금융이 2조원, 희망모아가 13조원, 신용회복기금이 7조원 규모였는데, 새출발기금은 화끈하게 30조원 규모로 시작을 함.

88. 대출을 갚지 못하고 만기만 연장하면서 버티고 있는 자영업자가 그만큼 많다는 말임.

89. 새출발기금은 개인 신용대출의 경우 1인당 10억 한도내에서 소득과 재산 등에 따라 원금의 70% 정도를 탕감 받게 됨.

90. 탕감 받고 남은 잔액을 1년 거치 10년 분할상환으로 갚게 되어, 역대 배드 뱅크 중에서는 가장 파격적인 원금 탕감 수준임.

91. 캠코는 금융회사의 부실채권을 가져온 후 새 출발 기금 프로그램을 돌리기 시작함.

92. 자영업자들은 이대로 버틸지 새출발기금등을 신청할지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활발하게 논의하는 모습이 보이고 있음.

93. 채무조정에 들어가면 기록이 남게 됨.

94. 신용카드 사용 등 정상적인 금융활동이 어려워지는 점이 있어 새출발기금도 불편한 점은 있음.

95. 부실채권을 가져와서, 회수를 잘 못하다 보니 캠코는 빠르게 부실화되고 있음.

 

새출발기금에 발목잡힌 '우량 공기업'…5년간 충당금 1조 쌓아야

뉴스내용

[서울경제] 1999년 사명을 바꿔 출범한 이래 단 한 번도 손실을 낸 적이 없을 정도로 ‘우량 공기업’으로 불리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올해 적자가 예상되는 것은 새출발기금 사업 때문이다. 캠코가 소상공인·자영업자의 부실 대출을 사들여 채무를 조정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캠코가 채권을 사올 때 들인 돈보다 차주가 실...

출처

서울경제

 

96. 캠코가 정부에 제출한 중장기 재무 계획을 보면, 2024년 부채비율이 200%를 넘어갈 것이라고 보고 있음.

97. 부채비율이 200%를 넘어가면, 재무 위험 기관으로 지정이 됨.

98. 재무 위험 기관으로 지정되면, 자산매각, 사업 조정, 경영효율화 등 재정 건전화 작업을 이행해야 함.

99. 캠코는 부채비율 증가의 원인을 새 출발 기금과 새마을금고 부실채권 인수의 영향으로 보고 있음.

100. 캠코는 2023년에 새마을금고 부실채권을 1조 원 이상 매입했고, 올해도 작년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부실채권을 매입하고 있다고 함.

101. 24년 11월 말 새 출발 기금 신청자는 9만 8434명에 채무액은 15조 8873억 원으로 집계되고 있음.

102. 내년에도 10조 원 이상의 새 출발 기금 지원을 하겠다고 하니, 30조 원의 지원한도는 내년이면 꽉 찰 듯한 상황임.

한 줄 코멘트. 주유소 바닥에 휘발유가 흥건해도 누군가 라이터 불을 던지지 않으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음. 2003년 카드사태가 금융회사 간 대출정보 공유 확대로 터졌듯이, 트리거라고 부르는 불쏘시개가 있어야 큰불이 나게 됨. 주유소 바닥에 휘발유가 흐르고, 유증기가 차고 있지만, 무엇이 트리거가 될지는 아직 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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