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의 팜
원달러 환율과 선물환 매도 (feat 조선업, 환헤지, 삼성중공업)
메르
2024.12.30
연말에 계속 어려운 이야기를 쓰는듯하네요.
이번 글은 이론적인 설명이 있어서, 좀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상황을 인식하는데 참고가 될듯합니다.
1. 조선업은 달러로 수주를 받는 산업임.
2.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 조선업은 스탠더드 방식으로 뱃값을 보통 받았음.
3. 스탠더드 방식은 총 5단계로 뱃값을 나눠 받는데, 계약금 20%, 중도금 20%씩 3차례, 잔금 20%로 뱃값을 지불하는 방식임.
4. 계약 시 20%, 건조가 시작될 때 20%, 후판을 절단할 때 20%, 배를 띄울 때 20%, 선박을 인도할 때 20%로 나눠서 받게 됨.
5. 배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과 비슷한 금액이 중간중간에 중도금으로 들어오는 방식이라는 말임.
6. 스탠더드 방식으로 배를 만들면, 조선사들은 운영자금을 따로 마련할 필요가 없고, 계약금과 중도금을 받아서 배를 만들면 됨.
7. 2005년 조선업 호황이 지나가고, 투기수요로 과다하게 만들어진 배들이 문제가 되자, 배를 주문하는 선주들이 갑이 됨.
8. 배를 주문하는 선주들의 힘이 세지자, 스탠더드 방식이 아니라 꼬리가 큰 헤비테일(Heavy Tail) 방식이 대금 지급의 대세가 됨.
9. 헤비테일 방식은 계약금 10%, 중도금 10%씩 3차례, 배를 인도할 때 잔금으로 60%를 지급하는 방식임.
10. 헤비테일로 수주를 받으면, 배를 만들기 위해 철판을 구입하고 인건비를 지불하는 돈이 계약금과 중도금만으로 부족해지게 됨.
11. 조선사들은 운영자금을 대출받아서 배를 만들고, 잔금을 받으면 대출을 갚는 식으로 자금 운용을 할 수밖에 없게 됨.
12. 수주를 많이 받을수록 순차입금 증가 등 조선사들의 재무구조가 나빠지는 원인임.
13. 헤비테일 방식의 문제는 운영자금 부족뿐만 아니라, 수주대금 대부분이 배를 인도하는 시기에 집중되어 들어오는 것임.
14. 조선사들은 2027년에 인도할 배에 대한 수주를 마감함.
15. 이번 달에 헤비테일 방식으로 수주를 받으면, 뱃값의 60%가 2027년에 들어온다는 말임.
16. 수주는 지금 달러로 받았는데, 2027년의 환율이 바뀌면 실컷 수주를 하고도 환율 때문에 손해를 보는 일이 조선사에 생기게 됨.
17. 물론, 환율이 반대로 가면, 환율에서도 이익을 보지만, 이런 복불복 수익은 기업에게 좋은 것이 아닌 것임.
18. 조선사들이 수주를 받아 계약금을 받으면, 선물환 매도라는 방식으로 2027년에 들어올 돈을 원화로 확정을 하게 됨.
22. 조선사들이 하는 선물환 매도는 은행이 받아줌.
23. 은행은 조선사들의 선물환 매도를 받고 가만히 있으면 안됨.
24. 미래의 환율 변동 위험을 은행이 질 수는 없기 때문임.
25. 물론, 가만히 있다가 환율이 오르면 은행이 큰 이익을 볼 수도 있지만, 은행 입장에서 이런 투기적인 플레이를 하지는 않음.
26. 은행 역시 환율 변동 위험을 피하고, 확정된 수수료 수입만을 먹는 처리를 하게 됨.
27. 만약 A 조선에서 환율이 1450원일 때 1억 달러의 2년짜리 선물환 매도 계약이 은행에 접수되었다고 가정해 봄.
28. 은행은 외국 은행으로부터 만기 2년짜리 외채 1억 달러를 빌려 옴(조금 더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만 간략하게 설명함)
29. 은행은 빌려온 1억 달러를 1450원에 국내 달러 현물시장에서 매도해서 원화 1450억 원을 얻게 됨.
30. 국내 달러 현물시장에 거액의 달러가 공급된다는 말임.
31. 은행은 달러를 환전한 원화 1450억 원으로 가계와 기업에게 2년 만기 원화 대출을 해주는 것이 일반적인 흐름임.
32. 2년 후, 외국 선사는 배를 인도받고 잔금 1억 달러를 조선사에 지불을 함.
33. 조선사는 2년 전에 선물환을 매도해 두었기 때문에 잔금으로 받은 1억 달러를 은행에 가져다줌.
34. 은행은 가계와 기업에 대출해 줬던 1450억 원과 이자를 회수해서 조선사에 미리 약정된 환율로 대금을 지급함.
35. 은행은 조선사에서 받은 1억 달러로 2년 전에 외국은행에서 빌려왔던 외채 1억 달러를 갚고 끝이 나게 됨.
36. 은행은 수수료 수익 외에, 외국은행에서 싼 이자로 빌려와서 한국 가계와 기업에게 비싸게 대출해 준 차익까지 먹게 됨.
37. 첫 번째 포인트는 수출 기업들이 수주를 받는 시점에서 미래에 들어오는 달러를 현물시장에 미리 팔아버렸다는 것임.
38. 두 번째 포인트는 선물환 매도가 해소되는 시점에 들어오는 달러는 외채 상환에 사용되고, 국내에는 풀리지 않는다는 것임.
39. 조선사들의 수주가 꾸준하게 이어지면 이 흐름이 계속 비슷한 규모로 돌아감.
40. 수주금액 중 계약금 10%를 제외한 중도금, 잔금의 상당 부분이 선물환 매도가 되면서 시장에 달러가 공급된 것임.
41. 2022~2023년, 무역수지가 연속 적자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원화가 생각보다 잘 버틴 이유이기도 함.
42. 2024년에 2027년 인도분의 수주가 끝났을 정도로 수주는 늘었지만, 조선소의 건조 캐파는 크게 늘어나지 않았음.
43. 조선사들은 캐파가 별로 없다 보니, 신조선가를 계속 높여 받으면서 수익성을 높여나갈 것이라 호황이 계속될 수 있음.
44. 문제는 독이 차있는 상태에서 너무 미래의 수주를 계속 받을 수가 없으니, 수주물량 자체는 피크가 왔을 수 있다는 말임.
45. 신규 수주가 줄어들면 선물환 매도를 하는 물량이 줄어들게 됨.
46. 앞으로 조선업에서 달러 현물시장에 들어오는 달러가 줄어들고, 시간이 갈수록 달러가 빠져나가는 속도가 빨라진다는 말임.
47. 흔싸귀비, 뭐든 흔하면 싸지고, 귀하면 비싸짐.
48. 현물 외환시장에 조선업 수주에서 들어오는 달러가 줄어들면, 달러가 귀해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임.
49. 조선사별로는 편차가 있을듯함.
50. 조선사들마다 환 위험 관리 정책에는 차이를 보이고 있음.
51. 삼성중공업은 100%를 선물환 매도하는 정책을 운용하고 있고, 다른 조선사들도 60~70% 정도를 보통 선물환 매도하게 됨.
52. 달러 수급 시각으로 보면, 지금까지 삼성중공업에서 수주받은 배에서 중도금, 잔금으로 들어올 달러는 이미 시장에 풀린 상황임.
53. 중도금, 잔금으로 달러가 입금되면, 선물환매도를 해놨으니 은행에 가져다줘야 하고, 은행은 외국은행에서 빌린 달러를 갚아야 함.
54. 100% 선물환 매도를 하지 않고 있는 다른 조선사들이 받게 될 30~40%의 중도금, 잔금은 시장에 풀릴 수 있음.
55. 조선 3사를 평균하면, 한국이 수주를 해서 건조 중인 선박에서 들어오는 달러의 80% 정도가 이미 시장에 공급이 완료되었다는 말임.
56. 신규수주를 해서 들어오는 달러와 선물환 매도를 하지 않은 20% 정도의 중도금, 잔금이 앞으로 조선업에서 들어오는 달러가 됨.
57. 정리하자면, 과거보다 조선업에서 들어오는 달러가 줄어든다는 말임.
58. 조선 3사 중 삼성중공업의 주가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도 선물환 매도와 영향이 있음.
59. 삼성중공업은 원 달러 1200원대에 달러로 수주를 받은 선박에서 들어오는 중도금, 잔금이 1476원대인 요즘 들어와도 돈이 안됨.
60. 100% 선물환 매도를 해놨기 때문에, 들어오는 달러 * 1200원이 수입 금액이 됨.
61. HD 현대 등 100% 선물환 매도를 해놓지 않은 여타 조선사들은 선물환 매도를 하지 않은 부분에서 들어오는 달러가 돈이 되고 있음.
62. 삼성중공업의 정책이 나쁘다는 말이 아님.
63. 원화가 강해지는 반대의 상황이 되면, 삼성중공업은 선물환 매도의 혜택을 즐길 수가 있음.
64. 원화가 약해지면, 선물환매도를 적게 하는 조선사들이 유리하고, 반대가 되면 100% 매도하는 삼성중공업이 유리한 정도임.
65. 신규수주는 상황이 다름.
66. 신규수주를 받아 1400원대에 선물환매도를 하는 게 복이 될지 아닐지는 2026~2028년의 환율에 따라서 달라질 것임.
한 줄 코멘트. 조선사가 수주를 하게 되면, 수주금액 전체를 선물환 매도해서 수주금액을 원화로 확정하게 됨. 독을 채우기 위해 활발하게 수주를 했던 2022~2023년에 환율을 안정시키는 데는 조선사의 선물환 매도로 들어오는 달러가 도움이 많이 되었음. 독이 2027년까지 만실이고, 2028년 분은 고객을 가려서 받는 상황이 됨. 조선사들의 수익성은 올라가겠지만, 선물환 달러에서 들어오는 대량의 달러 공급은 쉽지 않은 상황임. 삼성중공업은 환 위험 관리 정책의 차이로 달러로 수주받는 업종의 혜택을 충분하게 누리지 못하고 있음.